충돌 5초전 시동꺼짐 현상, 사고원인 분류엔 없는 차량결함 항목…운전자 과실로 둔갑하는 결함들

3차로에서 직진 중 차량 시동이 꺼졌다. 시동이 꺼진 차는 신호 대기 중인 앞차를 후미에서 추돌했다. 경찰은 ‘안전운전의무위반’이라고 교통사고 사실 확인원에 적시했다. 교통안전공단은 사고 기록 장치를 분석해 충돌 5초전 시동이 꺼졌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사고원인을 ‘차량 결함’으로 바꾸지 못했다. 경찰 사고원인 분류에 ‘차량 결함’이란 항목은 없다.
 

교통사고 사실 확인원을 본 가해자 김수정씨(65·가명)는 흉곽 내상에도 가슴을 쳤다. 그는 “시동 꺼진 차량이 앞차를 향하는 장면이 생생하다”며 안전운전의무위반이라는 경찰의 판단을 수긍하지 못했다. 교통사고 사실 확인원은 보험사로 넘어간다. 사고유형은 차대차. 피해 내용은 부상 2명. 보험사는 가해자 과실로 사고를 처리했다. 시동이 꺼진 사실은 사라졌다.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서 사라진 시동 꺼짐이란 사실은 사실 사고 순간 이미 효력을 잃었다. 충돌 5초전 시동이 꺼진 가해자 김씨의 차량은 계기판에 경고등 두 개를 띄웠다. 빨간색 배터리 경고등과 엔진오일 경고등은 시동이 꺼졌다고 운전자에게 알리는 신호다. 충돌 5초전, 충돌 2초전 혹은 충돌 1초전이라도 경고등이 점등되면 차량 결함은 없다는 게 판례다.

3만개 부품 조합이 자동차 1대를 구성한다. 3만개 부품 중 1개 부품이 일으킨 오작동이 차량 구동 자체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 계기판 내 제한된 공간에 나열된 경고등이 차량 구동에 필요한 주요 부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엔진 경고등, 에어백 경고등 등이 대표적이다. 완벽한 차량이 없다는 것을 경고등으로 제조사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충돌 5초전 시동이 꺼져버린 차량에 대해 제조사는 경고등 뒤로 결함을 숨겼다. 경찰은 결함을 찾아볼 생각도 없이 결함 사실을 없앴다. 도로교통법이 제48조 1항에서 안전운전의무를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등 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차량 시동이 꺼지면 운전자와 관계없이 조향장치가 잠기고 제동장치 성능이 떨어진다.

경고등을 빌미로 결함 사실을 가리는 사례는 사실 시동 꺼짐보다 광범위하다. 차량 주행거리가 10만㎞를 넘은 차량을 중심으로 엔진 오일이 급감하는 차량이 있다. 누적 판매량은 60만여대로 많다. 제조사 관계자는 “엔진 오일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 “엔진 오일 경고등이 점등했을 때 엔진 오일을 갈면 주행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내놓는다.


운전자는 이제 경고등을 잘 들여다보고 점등에 맞춰 즉각 반응할 일이 남았다. 엔진 오일 경고등이 들어왔는데 무시하고 주행할 경우 엔진에서 연기가 올라오거나 심한 경우 화재로 이어진다. 이때 엔진 내구성이 약하다는 사실은 없어진다. 경고등을 잘 보지 않은 운전자가 잘못이다. 자동차 제조사 직원이라면 시동이 꺼졌다는 경고등만 보고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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