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모토렌 베르켄 인수해 사명 바꾸고 車산업 기틀 마련…나치협력 과거 탓 말년 연금생활로 마감

프란츠 요세프 포프. / 사진=위키피디아

바이에리셰 모토렌 베르케

 

바이에른에 있는 엔진 공장이라는 뜻으로, 독일어 약자는 BMW. BMW는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와 더불어 독일의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꼽힌다. 국내서도 BMW의 인기는 꾸준하다. 수입차 시장에서 벤츠 다음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의 시작은 전혀 고급스럽지 못했다.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현재 BMW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18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빈에서 레알슐레(기술학교)를 다녔으며 1904년에 대학능력시험을 보고 브륀에서 기술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AEG-Union(알게마이네 엘렉트리시태츠 게젤샤프트)라는 전자제품 제조업체​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전차개발 부분 관리 감독을 맡았다.

 

요세프 포프는 이후 계속해서 기술자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간다. 1차 세계대전 시절 당시에는 뮌헨에 위치한 라프 모토렌 베르켄으로 파견됐다. 이 곳은 아스트로 다임러 베르케 AG의 하청업체였다. 그는 1916년까지 비행기 모터 생산 관리를 맡게 된다. 요세프 포프는 회사 경영 개선을 위해 350마력의 엔진 생산을 제안하는 등 개발자로서뿐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해군은 요세프 포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224개의 엔진 생산을 결정하기도 했다.

 

라프 모토렌 베르켄에서의 근무는 요세프 포프에게 운명적 사건이었다. 요세프 포프는 라프 모토렌 베르켄에서 일하며, 더 이상 회사가 기술적으로나 경영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근무환경은 열악했고,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는 너무 적었다

 

이에 요세프 포프는 라프 모토렌 베르켄 인수를 결정한다. 요세프 포프는 회사 인수와 동시에 회사 이름을 변경하는데, 이 이름이 바로 현재의 BMW(바이어리셰 모토렌 베르케).

 

요세프 포프는 AEG 사내 동기 막스 프리츠를 영입하며 BMW의 기틀을 잡아나간다. 프로이센 군대에 엔진 납품 사업을 따내는 동시에, 다임러 모터 생산 하청업을 맡는다. 그러면서 대규모 사업을 수주했다. 이데플릭이라는 항공업체에 600개 항공기 엔진을 납품하게 됐고,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BMW3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해 있었다.

 

1923년 요세프 포프는 막스 프리츠의 도움으로 최초의 BMW 오토바이를 생산한다. 이전까지 항공기 엔진 생산에 주력하다 오토바이 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당시 독일의 어려운 경제상황 탓에 오토바이 수요가 더 많았다. 요세프 포프는 오토바이용 엔진뿐 아니라, 계속해서 항공기엔진도 개발하며 사업 성장세를 이끌어나간다.

 

그러나 요세프 포프 역시 시대의 흐름을 빗겨갈 수는 없었다. 1933년 나치당에 협력하며 당에 가입하게 된다. BMW 엔진 생산 능력을 이용해 엔진을 납품하는 등 당에 조력한다. 그러나 1942년 나치당으로부터 획일적인 생산을 강요당하자, 이에 항의하다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나치 당에 협력한 과거 때문에 연합군에 잡혀 옥살이를 한다. 이후 심판에서 나치 조력자로 판결 받았으며 감옥에서 풀려난 뒤 BMW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차례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요세프 포프는 이후 여생을 슈트트가르트에서 연금생활자로 보내다 1954년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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