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안되고 주차 안되는데…정부는 대형마트 휴업만 늘리기
어릴 적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자주 갔던 5일장, 3일장. 시장 한 켠에서는 각설이의 품바타령이 흥을 돋우며 다른 한 켠에서는 약장수가 현란한 말솜씨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시장은 엄마 심부름을 나온 소년이 쌀 몇 말(斗)을 달라하면 한 됫박을 얹혀주는 후한 인심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물론 재미는 덤이다.
세월이 흘러 전통시장이 있던 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섰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던 재미들도 점차 사라지면서 어느덧 과거의 얘기다 됐다. 지금 있는 전통시장은 단지 대형마트보다 조금 싼 시장이 된 지 오래다.
전통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살아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혹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통시장에 가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카드도 안 되고, 주차도 안 되고, 현금영수증도 안 된다. 도심에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원인은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정부 당국자들만 모르는 듯하다. 정부가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선 정책들을 보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무휴업일의 확대다. 현재 대형마트는 인근 지역상인들과 상생차원에서 한 달에 두 번을 문을 닫는다. 이를 4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물론 취지는 좋다. 그러면 그간 쉬었던 2일 동안 전통시장 매출은 늘었을까. 이미 많은 조사결과에서 이를 부정하는 통계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한 연구팀은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시작한 후 지난 5년간 전통시장의 매출증가는 1%포인트도 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확대 방안을 제외하면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이다. 소비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대형마트가 문을 닫기만 하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게 될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다.
사실 전통시장이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 대형마트는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최근 개장한 서울의 한 대형마트는 매장 내 핵심공간을 모두 내방객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채웠다. 소비자들의 호응도 역시 좋을 수밖에 없다.
수 년 전 전통시장에도 비를 맞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붕아케이드를 설치해 편의사항을 늘렸다. 화장실도 개보수하고 자체상품권으로 추가할인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시장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꺼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자는 최근 서울의 전통시장들을 취재하면서 지자체 관계자와 전통시장 상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예산이 부족해서 주차장확보가 언제 진행될지 모른다”(지자체 관계자), “우리는 소액은 카드를 받지 않는다”(A전통시장 상인).
문제는 이같은 불편들을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