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감소, 명절선물 축소, 영업방식 변화…대관담당자 고충은 가중
김영란법은 1년 6개월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해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오는 28일이면 정확히 꼬박 만 1년이 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특히 제약업계는 긍정적 변화가 많았다는 평가다. 대한민국의 3대 비리 업종으로 일컬어지는 제약업계가 법률 시행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탓이다.
우선 매출 상위권 제약사들의 접대비 규모가 대폭 줄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 1000억원 이상인 상장 15개 제약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접대비 항목이 있는 10개사 중 8개사 접대비가 대폭 감소했다.
이들 10개 제약사의 접대비 총액은 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4억원)보다 19% 감소했다. 물론 제약사들이 제출한 접대비 내역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또 접대비 항목이 없는 5개 제약사가 본지에 구체적 규모를 밝히지 않은 점 등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화약품의 경우 마지막까지 접대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적 접대비 규모는 축소됐으며, 전반적 제약사 접대 문화도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긍정적인 성과로 분석된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도 이같은 업계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최근 ‘명절 선물 안 받기 캠페인’ 취지를 담은 대표이사 명의 엽서를 거래처에 발송하는 등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명절선물을 대폭 줄이거나 자제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분위기다. 업체 입장에서 매년 부담이었던 선물을 줄이는데 김영란법이 한 몫 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김영란법에는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 상한선이 5만원으로 규정돼있다. 하지만 이같은 기준과 별도로 선물 제공을 최소화하는 업계 현실이다.
법 시행은 제약사 영업방식에도 큰 변화를 줬다. 그동안 리베이트 영업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보다 현실적 영업방식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유유제약은 최근 영업사원 화술 및 표현력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연기교육을 도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유유는 지난 7월 하순부터 영업사원에 발음과 발성, 복식훈련을 통한 기초연기, 드라마 실습 기초 과정 등을 교육시켰다. 현장에서 의사나 약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영업해야 하는 특성을 감안해 소통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해석된다.
종근당과 한국MSD도 공동으로 판매하는 당뇨병 치료제 자누비아 영업에 VR 기기 ‘자누비아VR 디테일’을 도입한 바 있다. 이 기기는 의료진에 다양한 당뇨병 환자 임상데이터를 제공하고, 환자 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김영란법 시행이 제약업계에 긍정적 변화만 가져다 준 것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영업방식의 변화는 그만큼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사 등 전문가를 만나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의사들이 영업사원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확실하다”면서 “개원가보다는 종합병원에서 이같은 흐름이 강하다”고 말했다.
제약사 대관담당자들도 법 시행 이후 대관업무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출입하며 공무원들을 만나 소통해야 하는데, 만남 그 자체도 쉽지 않은 형국이 됐다는 얘기다. 공무원들과 미팅을 마치고 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 한 마디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부 한 부서는 업무 성격 상 외부 인사들이 자주 방문하는데, 깐깐한 과장 성격으로 인해 캔커피도 사절한다는 후문이다.
제약사들과 관련이 깊은 업무를 다루는 보험약제과의 경우, 과거 서울 계동청사 시절 모 제약사가 가져온 떡이 너무 많아 기자실에 돌렸던 적도 있었다. 당시는 양심적인 과장이 재직 중이어서 그같은 일이 가능했지만, 떡 이상 접대를 받아도 알 수 없는 시절이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정말 깨끗해졌다”며 “일례로 다른 업계는 접대비가 오히려 증가한 사례도 있지만, 1년 동안 제약업계는 숨 죽이고 정부 눈치만 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