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D 또 다시 어깃장에 매각전 막판 혼돈…삼성‧하이닉스 ‘D램’ 무기로 호황 이어갈듯
도시바 메모리를 둘러싼 쟁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반발이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차 혼돈에 빠져드는 양상이 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전선에는 특별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양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나날이 좋아지는 형국이다.
2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은 26일 도시바 메모리 매각과 관련해 국제중재재판소에 매각 일시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미 WD는 지난 5월 국제중재재판소에 도시바 메모리 매각중지 신청을 냈었다. 그런데 이 심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연합이 매각 대상으로 결정됐다. 결국 WD는 일시정지를 통해서라도 어깃장을 놓겠단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WD가 반발의 고리로 삼고 있는 게 한미일연합에 참여한 SK하이닉스다. WD는 “컨소시엄에 SK하이닉스가 참여한 것은 조인트벤처(JV)와 일본의 기술 유출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WD는 도시바와 JV를 설립해 일본 욧카이치 공장에서 협업해왔다.
SK하이닉스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수를 마무리 짓기 위해 27일 중 일본으로 출국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 이사회는 20일 한미일연합에 도시바 메모리를 매각하기로 결의한 후 막상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애플의 막판 요구가 쟁점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애플과의 이견이 반도체 공급 규모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애플과 델, 씨게이트 등 컨소시엄에 속한 업체들은 도시바 경영 참여 후 증설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최근 시장조사기관들의 일치된 견해다. 애플은 이미 자사 제품에 필요한 반도체의 상당량을 도시바 메모리 욧카이치공장에서 공급받고 있다. 고객으로서 요구하는 것과 주주로서 요구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증설에는 돈이 필요하다. 산업 특성 상 막대한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한미일연합은 WD가 속한 신미일연합보다 자금 측면에서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다. 이를 놓고 최근 D램익스체인지는 “중장기적으로 도시바 메모리에 투입될 자본은 ‘아드레날린 주사’와 같다”고 비유했다. 특히 도시바 메모리가 보유한 원천 기술은 대규모 투자에도 명분을 제공해 준다.
이렇게 되면 낸드플래시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의 핵심동력은 공급부족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이 45%를 상회하는 이유다. 공급이 늘면 수익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D램익스체인지는 “2018년 상반기 말쯤부터 도시바가 3D 낸드의 생산능력과 수율을 끌어올리며 낸드플래시 시장에 공급 증가로 촉발된 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더 공세적인 설비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삼성전자는 7월 평택 반도체 단지에서 제품 출하식을 갖고 최첨단 3차원 V낸드 양산을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용량 V낸드와 차세대 SSD 솔루션을 선보였다. SK하이닉스도 72단 3D 낸드플래시로 기술 담금질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5개 업체가 큰 점유율 변동 없이 꾸려오던 시장은 그만큼 변동 가능성을 품게 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별다른 변수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두 기업이 점유율 1, 2위를 수성 중인 D램 비즈니스가 건재한 덕이 크다.
최근 보수적 전망 경향이 짙어지는 국내 증권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가 오르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달부터 국내 증권시장에는 애널리스트 주식 분석 보고서에 목표주가 괴리율을 적시하도록 하는 의무공시제가 시작됐다. 목표주가 상향에 부담이 따른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복수의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50만원까지 상향조정했다. 그만큼 업황이 좋다.
반도체업계 사정에 밝은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워낙 앞서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D램이 워낙 잘 나가니 낸드플래시가 상대적으로 아쉬워 보일 뿐”이라면서 “낸드시장이 이미 데이터센터 스토리지로 축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애플의 참여도 시장 구도 자체를 바꿀만한 큰 변수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