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근로자 떠넘겨”…현대제철 거래상 지위 남용 논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대제철이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구내 장비 운용 협력업체인 A사에 또 다른 협력사인 B사 인수를 요구,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B사는 당시 현대제철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A사가 부채 감당이 어려워 인수대금 마련 불가를 호소하자, 현대제철은 같은 그룹 계열 여신전문금융사 현대커머셜을 끌어들여 대출을 지원, B사 매각을 마무리하고 근로자 고용을 승계시켰다.
6일 시사저널e가 단독 입수한 불공정거래행위 위반 신고 내역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14년 3월 현대커머셜로부터 73억5000만원 상당을 끌어와 당진제철소 용역 체결을 조건으로 A사에 빌려준 뒤 B사를 매각했다. A사와 같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구내 장비를 운용하는 사내 협력업체인 B사는 당시 노동조합원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움직임 등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이를 놓고 업계에선 현대제철이 B사 노조가 현대제철을 상대로 꺼내들 것으로 보였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패소없이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매각 추진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3년 B사 노조는 구내장비 도급작업을 맡은 사내 협력업체에 고용돼 있을 뿐, 현대제철 장비로 현대제철 사업장에서 현대제철 제조공정에 연동해 일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현대제철 근로자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A사는 B사 장비를 인수하고 근로자 고용을 승계한 이후, B사 소속이었던 근로자의 근속인정은 물론 노사기본협약 이행을 거부했다. 기업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인 탓에 유급 주휴일 보장 등이 포함된 노사기본협약이 비용으로 분류돼 협약 체결 거부가 가능했던 덕이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조는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가 인수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A사는 2012년 3월 시작한 회생절차 졸업을 위해 일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며 “A사가 인수의향서를 낸 만큼 호혜적 지원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제철은 A사가 현대커머셜 대출금으로 B사를 인수하면 노후장비 교체 승인 및 교체 장비에 한 감가상각비를 최초 장비 취득가의 90%까지 지원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A사 설명은 다르다. 현대제철에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게 A사 주장이다.
A사에 따르면 현대제철을 믿고 현대커머셜이 내어준 73억5000여만원으로 B사 장비(20억3500만원)와 현대글로비스 장비대금(48억9300만원)에 더해 신규장비까지 구매했지만, 노후장비 교체는 거절됐고 감가상각비 지원도 받지 못했다. A사 관계자는 “B회사 근로자만 떠안았다”고 토로했다.
현대제철은 A사가 B사 장비 42대 인수 및 근로자를 승계하고 현대글로비스 장비 36대까지 가져온 2014년 노후장비 교체 투입 의사를 밝혔으나, 2015년 6월 “향후 운영방안 변화가 예상돼 노후 장비 교체를 보류한다”고 전달했다. 현대제철은 애초 노후교체를 예정했던 25톤 덤프트럭 4대, 굴삭기 1대를 보류하고 15톤 덤프트럭에 대해서만 단가 계약을 유지했다.
A사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요구사항을 모두 이행했음에도 노후 장비 교체와 감가상각비 지급을 모두 거절당했다”면서 “현대제철이 돌연 장비 교체를 거절하면서 장비 수리비는 물론, 동일기종 대체 장비를 투입하느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A사는 7년된 진공흡입차 1대에만 2015년 1년 간 105회 입고, 3070만원이 투여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에선 현대제철이 A사에 현대글로비스 장비와 B사 장비를 모두 인수하게 한 것은 거래상지위를 남용해 구입을 강제하거나 불이익을 준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A사에 B사 고용승계를 강요한 것 역시 거래상 지위 남용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제23조에서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선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현대제철은 2014년 B사를 A사에 현대커머셜 대출을 통해 매각하는 것에 대해 법원 허가를 획득한 만큼 불공정거래와 관계가 없다는 태도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A사는 현대제철의 일감 지원으로 회생절차를 시작한 이후 3년 만인 2015년에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면서 “A사의 인력 운용 능력 등을 높이 사 A사를 지원하기 위해 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노후 장비 교체 보류 결정은 2014년 12월 고로 2기 조업 지원에 투입된 덤프트럭 4대와 굴삭기 1대에 대해 노후를 확인하고 교체를 요청했지만 A사가 교체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라며 “노후장비를 교체해야 지원을 할 수 있음에도 A사는 2015년 6월까지 자금 압박을 이유로 교체에 나서지 않아 지원을 보류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A사는 노후장비 활용 지속에 따른 작업효율성 저하 등을 이유로 2014년 3월 3단 굴삭기 계약 해지를 시작으로 2015년 9월과 2016년 6월 잇따라 장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장비 계약 해지 이후에도 인건비나 수리비 등을 오롯히 감당했다는 게 A사 측 주장이다. 이후 A사는 현대커머셜로부터 2017년 3월 기한이익상실 통지를 받고 계약이 해지됐다.
이에 A사 관계자는 “현대커머셜 이자를 연체한 적이 없다”면서 “현대커머셜이 양도담보를 설정한 매출채권에 대해 양도담보를 실행할 수도 없는 것”이라며 광역자치단체에 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역자치단체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정 진행 이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해당 사안을 공정거래위원회로 이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