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실적 은행권에 퇴직 행원도 늘어…"떠날 직장" 분위기 팽배하면 리스크 관리 구멍 생길 수도
은행원이 생존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때문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은행원의 출현 때문도 아니다. 자기가 몸담은 은행이 직원을 보는 시각 때문이다. 은행원은 경영진에게 '비용'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수익 창출 '도구'로도 여겨진다. 은행원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최근 은행권에선 유례없는 대규모 퇴직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겨울 은행권에 불어닥친 감원한파는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3월말 시중은행 행원은 총 2만9058명이다. 지난해 3월말(3만1876명)보다 8.8% 줄었다. 감소 추세는 매년 계속되고 있고 증가세는 매년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10년차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올해 초 2800명이 직장을 떠났다. 경영진도 "이렇게 많이 나갈 줄 몰랐다"는 입장이었다. 우리은행 올해 하반기 희망퇴직 신청자는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은행 수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은 8조10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조1000억원(171.4%) 급증했다. 이렇게 수익이 나는 업종에 있는 직원들이 자부심보단 불안감을, 다니고 싶은 직장 개념보단 힘든 직장 개념을 갖고 일한다면 문제다. 은행권이 사상 최대 실적으로 호황을 누리면서도 그 안에서 종사하는 직원 숫자는 갈수록 감소하는 모순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사상 최대 당기순익과 사상 최대 행원 감소라는 상황은 은행 미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 순익이 고공행진을 거듭할수록 은행은 효율성을 강조하고 비용을 따질 수 밖에 없다. 순익 증가는 행원에게 업무량 증가와 실적 압박을 유발한다. 이에 지친 은행원은 인력 감축 분위기 아래 실적이 좋을 때 더 많은 돈을 받고 떠날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줄어든 은행원 덕에 일반관리비는 줄겠지만 은행은 이를 '일시적 이익'으로 여겨야 한다. 은행을 떠난 직원이 수행하던 업무는 '업무량 불변의 법칙'으로 지점 안에 계속 남는다. 그 일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 그 업무를 공평하게 지점 직원들이 나누고, 새로운 상품을 또 판매하고, 실적 압박은 더 심해지고, 견디다 못한 직원은 결국 고객보단 실적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래서 은행원 10명 중 9명이 고객 이익보다 실적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판 경험이 있다는 조사가 나오는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은행 직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87%가 고객 이익보다는 은행 KPI(핵심성과지표) 실적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금융회사들이 숫자의 경영학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수익 창출과 대규모 감원 발생을 계산기로만 분석할 일이 아니다. 은행원들 사이에 은행은 떠날 직장이라는 인식이 커지면 은행 리스크 관리는 어려워진다. 은행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은행원 관리가 리스크 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