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한화·두산·부영 수사 속도 낼 듯…삼성·효성·롯데도 ‘관심’
문재인 정부의 검찰 인사가 17일 마무리 되면서 ‘적폐청산’이라는 정부 기조에 맞춰 재계에 강도 높은 사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문무일 검찰총장 등 고위 간부 인사에 이어 이날 차장·부장·부부장 등 고검 검사급 검찰 중간간부 638명과 평검사 31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개혁과 인적 쇄신에 집중된 새 정부의 첫 검찰 진용이 완성된 것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민정수석실도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해지면서 민정에서 검찰로 이어지는 사정 라인이 본격 가동되는 모양새다.
사실 지난 100일간 문재인 정부 아래 검찰의 재계 수사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첫 방산비리 수사로 꼽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영 비리 수사는 협력업체 대표 1명을 구속하는 데 그쳤으며,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면세점 부당선정 의혹을 받는 한화와 두산 수사도 감사원 고발 이전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수십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 등을 받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고발 사건 역시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민생검찰’을 표방하며 첫 타깃으로 삼은 미스터피자 갑질 사건도 대기업 수사라고 보기에 빈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고위 검사 출신 한 법조인은 “대대적인 인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검사들은 섣불리 큰 수사에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의 새 진용이 갖춰지면서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한 재계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먼저 KAI의 원가 부풀리기 및 비자금 의혹은 방산비리 사건이라는 점에서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고, 이 때문에 검찰이 심혈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KAI에 항공기 날개 부품을 공급하던 협력업체 대표 황모씨를 허위 재무제표를 만들어 부당 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황씨가 KAI의 인사팀 간부 손모씨에게 납품청탁을 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손씨는 하성용 전 대표의 측근으로 비자금 조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된다. 이번 수사는 하 전 대표의 소환 시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KAI 수사가 방산비리 사건일 뿐만 아니라 권력 유착형 게이트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먼 친척관계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사가 검찰 시작되자 돌연 사임했다.
한화와 두산의 면세점 특혜 사건도 주목된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25억원과 11억원을 각각 출연한 두 기업은 ‘국정농단 사건’에 이름을 올렸으나, 검찰 수사가 삼성 뇌물사건에 치중되면서 사정의 칼날을 피했다. 하지만 지난달 감사원이 ‘관세청이 두 기업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 지난달 7일 천홍욱 전 관세청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천 전 청장은 2015년 면세점 선정과정에서 평가 점수 조작 등 부정행위가 있었던 서류를 무단 유출하거나 파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됐다.
재계 16위 부영그룹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 대한 감사원 고발은 지난해 4월에 있었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부회장을 추가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친척이 경영하는 회사를 계열사 명단에서 제외하고 지분 현황을 실제 소유주가 아닌 차명으로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소속회사·친족·임원현황과 소속회사의 주주현황 등 지정된 자료를 매년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02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공정위에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자신의 친족이 경영하는 7개사를 소속회사 현황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가 누락된 계열사는 흥덕기업, 대화알미늄, 신창씨앤에이에스, 명서건설, 현창인테리어, 라송산업, 세현 등이다.
검찰은 또 청와대 캐비닛에서 나온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 및 시민단체가 고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배임 및 횡령 사건, 참여연대가 조석래 효성그룹 전 회장 등 오너일가를 고발한 사건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서류가 검찰 수사로 이어질지도 관심이 쏠린다.
10대 그룹 한 고위 인사는 “검찰이 조직정비를 마치는 대로 본격적인 사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면서 “위에서도 ‘대비하라’는 구체적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