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대책후 세입자들 매입 대신 전월세시장 잔류…재건축·재개발 주택 철거 따른 이주 수요 증가도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전세로 살고있는 정모 씨(36·회사원)는 지난 2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지난 2년간 치솟는 집값을 지켜보며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참에 오는 10월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8·2 대책 발표로 집값하락 조짐이 보이자 한번 더 전세로 살면서 자금을 모으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당장 가을 이사를 앞두고 있다보니 느긋하게 흐름을 지켜볼 처지가 아니라 조바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사철인 가을을 앞두고 서울 전월세 등 임대차 시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전세시장은 투기수요를 정조준한 8‧2 대책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듯 하지만 되레 이때문에 파급력을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초 전세보증금이 수년 째 꾸준히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올 가을 강남권 재건축에 따른 이주세대 급증은 서울 전세시장 불안정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8·2 대책이란 변수까지 발생했다. 전세시장에서 매매시장으로 진입하려던 이들이 집값 하락 가능성에 따라 당분간 임대차시장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수급 불안정 현상을 점치는 세입자들의 고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 들어 전세시장은 매매시장보다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전세물량이 부족한 지역의 오름폭은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책발표 직후였던 지난주 서울 전세가격은 0.09% 상승했고 신도시와 경기·인천도 각각 0.02%씩 올랐다. 원인으로는 재건축·재개발 주택 철거에 따른 이주 수요 증가가 꼽힌다.
업계는 올 하반기 서울에서만 재건축·재개발 주택 철거에 따른 이주 수요가 최대 5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이주세대 전체의 40%를 넘는 2만여 가구가 강남4구에 몰려 있다. 강동구에서는 둔촌주공(5930가구)단지가 이미 지난달부터 이주에 들어갔고 오는 16일부터는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2840가구)의 이주도 시작된다. 곧 관리처분을 신청하는 개포주공 1단지(5040가구)도 연내 이주 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강북에서도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이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대문구의 경우 사업승인∼관리처분 단계에 있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5440가구에 이른다. 동대문구 4500가구, 성북구 4100가구, 은평구 2900가구, 양천구 2100가구, 동작구 200가구 등 순으로 이주대기 물량이 많다.
여기에 8·2 대책으로 LTV, DTI 규제 등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매수세 위축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따라 주택을 매매할 매수자들이 전월세로 눌러앉는 등 전세매물 부족 및 이에따른 보증금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수요자의 경우 주택구입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전월세 수요 증가로 인한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전문가들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은 “매맷가가 하락하고 있는데도 시장 관망세가 이어지면서 매수하는 이가 줄었기 때문에 전세를 연장하려는 세입자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이주수요가 많고 학원가 동네 등 국지적으로는 현재보다 전세가 상승까지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과거 급등했던 시절처럼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 연구원은 “매맷가는 하락하고 있고 전세가율은 이미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전세보증금이 오를 구멍은 크지 않다. 깡통전세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름폭은 한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