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장기전환 허용·SR과 코레일 통합 추진…다주택자 세금감면 등 공공성 역행 지적도
건설‧부동산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최근 정책추진 과정서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주택 정책으론 임대주택 장기 임대 전환허용, 철도 정책에서 수서발 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한국철도공사(코레일) 통합추진, 도로 부문에선 통행료 인하 등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부문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김현미 장관의 발언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 과정서 되레 공공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와 눈길을 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임대사업자가 4년 기간으로 등록한 임대주택을 도중에 8년짜리 장기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법상 양도소득세 감면,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을 수 있는 준공공 임대주택을 늘려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일환이다. 당장 정부 세수가 적게 들어오지만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 임대매물 확대를 통해 임대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국토부의 의중이다.
건물주가 준공공 임대주택을 10년간 임대를 유지하면 양도소득세가 100% 감면된다.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임대 기간이 8년 이상이면 공제율이 50%가 된다. 다주택자 임대매물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국토부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등 하위법령 개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현미 장관 취임 이후 국토부는 철도, 도로 등 교통부문 공공성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 장관이 취임후 강조한 교통 서비스 공공성 강화의 후속조치다.
국토부는 최근 SR과 코레일 통합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맹성규 국토부 2차관이 “연내 결론을 내겠다”고 발언하는 등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 장관은 야당 의원 시절 SR 출범 반대의지를 표력한 바 있다.
이같은 국토부의 행보는 철도산업 ‘공공성’ 확보의 일환이다. 지난해 SR출범 당시 ‘철도 민영화’를 우려한 철도노조와 문 대통령간 협의, 경쟁체제 확립에 따른 코레일의 수익성 악화 등 공공성 침해 부작용을 해소하는 일환으로 SR과 코레일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수요가 정기적으로 보장되는 ‘황금노선’을 SRT가 가져가면서 벽지노선 운행, 시설투자를 진행해야 할 코레일이 경영상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근거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재정전환도 추진되고 있다. 당초 서울~세종 고속도로는 민간투자사업으로 첫삽을 떴다. 그중 안성~세종 구간은 GS건설이 위험분담형(BTO-rs) 민간제안사업으로 제안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적격성 통과를 받기까지 10년이 소요됐다. 이를 민간사업이 아닌 국가가 전담하는 재정사업으로 진행해 통행료 인하 등을 달성하겠다고 국토부가 공언한 셈이다.
아울러 국토부는 인천대교 통행료를 종전 6200원(승용차‧편도 기준)에서 5500원으로 인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된 인천대교는 영국계 다국적 개발회사인 AMEC, 맥쿼리 소유 한국민간인프라투자가 지분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기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을 통해 이자비용을 낮춰 통행료 인하에 보탬이 되도록 국토부는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공성 강화 속 도외시되는 ‘본질 회피’, ‘공공성 훼손’
이같은 김현미표 공공성 강화 행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공공성 강화란 미명하에 실제 필요한 정책을 뒷전으로 돌리고 무리한 정책 추진과정서 서비스 강화 및 정책 일관성이란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기 임대주택 중도 전환의 경우 가장 필요한 ‘다주택자의 사회적 책임’ 제고를 국토부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의도하는 ‘질 좋은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선 다주택자의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을 적극 유도하면서 투명한 과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임대주택 사업자 등록을 유도해야 할 국토부가 ‘세금감면’이란 당근책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아울러 SR과 코레일 통합은 경쟁을 통한 서비스 품질 제고란 시장 본질을 도외시한 결정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SRT는 코레일의 KTX 대비 10% 저렴한 요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코레일은 요금 5~10%를 적립해주는 마일리지 제도를 재도입하는 등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두 회사의 통합이 이뤄질 경우 이같은 서비스 경쟁이 사라져 결국엔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SR 노조 측은 SRT 운영에 따른 철도산업 효율성 제고를 거론하며 “통합논의가 일방적이고 정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SR 출범 후 경쟁을 통해 국민 편익이 증진되는 효과가 나고 있다. 그럼에도 성과를 애써 숨겨가며 통합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억지”라고 강변했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재정전환, 인천대교 통행료 인하의 경우 공공성 훼손 가능성이 역으로 제기된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재정전환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건설협회는 해당 사업을 진행한 민간업체의 손실을 지적한 뒤 “정부정책의 급격한 변경으로 민자사업 전반에 사업 불확실성이 확대돼 민자사업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정부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통한 국내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 지원 및 매력적인 외국인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오히려 시장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은 국가경제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즉, 정부의 정책 일관성 철회가 역으로 공공성을 억제할 수 있다고 대한건설협회 측은 바라보고 있다.
인천대교의 경우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인천시 측의 지분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대교에서 인천시가 보유한 지분은 5.97%다. 지분이 추가로 매각될 경우 AMEC, 맥쿼리, 기업은행, 국민은행의 지분이 커지게 된다. 이는 미래 인천대교 통행료 결정과정서 민간기업의 입김이 더 세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 이명박 정권을 시작으로 공공시장에서도 효율성 강화,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정부 차원에서 나왔다. 해당 기조를 새 정부가 공공성 강화 쪽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급작스럽게 정책이 추진되는 감이 없지 않다”며 “단기적 정책효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시각에 입각해 정책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면 공공성 강화는 자연스레 뒤따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