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조작해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5년간 2조원 넘는 세금탈루
# 서울에서 소규모 청바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 그는 값싸고 질 좋은 원단을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B를 소개받았다. B는 A에게 다른 업체보다 원단을 싸게 공급해 준다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A는 원단 품질도 나쁘지 않고 비용절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B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국세청에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려다보니 매입처 세금계산서가 하나도 없었다. 매출은 20억원에 달했다. A는 결국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C를 찾았다.
비용을 아껴 많은 이익을 남기기 원하는 A, 매출을 속이기 위해 세금계산서를 발행 안 한 B,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C는 모두 조세 탈세범이다. 이 같은 탈세행위는 위 사례의 의류업종뿐만 아니라 제조업종 전반에 걸쳐 종종 일어한다. 과거 정부가 세금탈루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매입자납부제도를 도입하기 전에는 수백억원이 오가는 금지금, 철스크랩 등에서도 흔히 발생했다.
A~C 모두 탈세를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자료상으로 불리는 C다. C는 제대로 된 사업의 외형을 갖추지 않고 가짜 세금계산서만 발행하면서 유통거래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히고 있다. C는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C는 속칭 ‘바지사장’이라는 제3의 인물을 내세워 단속을 피하기도 한다. 국세청이 사업자 신청을 할 때 현장확인을 일일이 할 수 없기 때문에 C같은 자료상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20억원의 매출을 올린 A가 만약 B가 아닌 다른 원단 공급업체와 정상적인 거래를 했을 경우 10억원의 원단구입비용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A는 20억원에서 10억원을 뺀 10억원에 대한 1억원의 부가가치세 납부 의무가 생긴다. 그런데 A는 B와 거래에서 세금계산서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입비용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자료상인 C를 찾았던 것이다. 이 경우 A는 세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입액을 부풀린다. C로부터 15억원의 세금계산서만 받아도 A의 세금은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 줄게 된다. 세금계산서 발행 총액에 10%를 수수료를 받기로 약정한 C는 앉아서 1500만원을 번다. 단속만 걸리지 않는다면 이들 입장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거래가 되는 것이다.
국세청에 적발되면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먼저 A는 매입액을 의도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종합)소득세를 재계산해 추징된다.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제받았던 매입세액 역시 부인돼 가산세를 물게 된다. B역시 소득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세가 재계산되고 가산세가 부과된다. C는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탈루세금의 3배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해진다.
C같은 자료상들의 탈세범죄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청주지법은 1000억원대의 허위계산서를 발행한 30대 2명에게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과 함께 약 1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들은 주유소에 574억원 상당의 석유를 공급한 것처럼 가짜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뒤 관할 세무서에 거짓으로 부가가치세를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대 국정감사에서는 세무자료상들이 지난 5년간 40조원이 넘는 규모의 허위 세금계산서로 2조2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