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시스템 도입으로 부담 더 커져…中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 등 반사이익
과거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기 전, 게임사의 수입은 대부분 패키지 판매였다. 게임회사가 게임을 개발하면 중간 유통회사가 박스 형태의 패키지로 출시해 유저들이 책정된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즉 일반적인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불법 복제가 판을 치게 된다. 패키지 판매로 돈을 벌던 게임사들은 불법 복제로 인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일부 게임사들은 도산하게 된다. 이후 한국은 PC 게임대신 불법 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온라인게임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초창기 온라인게임 시절에는 월정액이 대표적인 과금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월정액은 일정 금액을 매달 납부하는 방식이다. 국내 업체들은 월정액 요금으로 대부분 2만∼3만원 정도를 책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저들의 과금 부담은 크지 않았다. 월정액 요금만 내면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속 캐릭터가 강해지기 위해선 단지 시간만이 필요했다.
◇부분유료화의 함정…과거 정액제 시절보다 오히려 과금 증가
그러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획기적인 과금 방식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바로 부분 유료화다. 부분 유료화는 무료로 게임을 제공하고 일부 아이템에 과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부분 유료화 역시 초창기에는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월정액처럼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 매달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자, 순식간에 유저들이 몰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결국 유료 아이템 구매가 필수로 요구됐다. 문제는 여기에 들이는 비용이 기존 월정액 비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월정액 게임의 경우,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모든 유저가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반면 부분 유료화 방식에서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게임을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유저들은 많은 돈을 들이면서까지 자신의 캐릭터가 강해지길 원했고, 이에 과금을 하지 않는 유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바일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시장이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재편되면서, 수많은 개발사들은 모바일게임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게임사들은 모바일게임 과금에 있어서도 부분 유료화 방식을 대부분 채택했다. 온라인게임에 비해 가볍게 만들어지는 모바일게임에 월정액을 지불할 유저는 많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초창기에는 게임 자체를 판매하는 패키지 방식도 병행됐으나, 현재는 대부분 게임사들이 부분유료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부분 유료화의 폐해는 극에 달한다. VIP 시스템과 뽑기 시스템 등이 도입되면서 과금 유저와 무과금 유저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지게 됐다. 특히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때까지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뽑기 시스템으로 인해 유저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다. 과거 온라인게임에서도 뽑기 시스템은 존재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이벤트성에 그치기 마련이었다. 이를 통상적인 시스템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모바일게임이다. 뽑기 시스템 즉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이제 정치권에서도 눈여겨 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일부 국회의원은 과도한 뽑기 시스템을 막고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게임사들이 뽑기 시스템을 개선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모바일게임 수익구조는 상위 1% 유저가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비정상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모바일게임 수익구조 자체를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상위 1% 유저들을 위한 시스템에서는 좋은 밸런스의 게임이 나오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국산 게임은 과금 없이는 힘들다”…외산 게임으로 떠나는 유저들
국산 게임의 과도한 과금 유도에 지친 유저들은 외산 게임으로 떠나고 있다. 외산 게임의 경우, 국산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금 유도가 덜하기 때문이다. 이미 PC 온라인게임은 외산게임에 점령 당한 지 오래다. 국산 게임에 비해 높은 게임성을 겸비한 동시에 과금 유도가 덜하는 점이 국내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현재 PC방 점유율 1위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경우, 부분유료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스킨 등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아이템만 판매하고 있다. 대다수 국산 게임들이 과금에 따라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과 대비된다.
PC방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버워치’도 비슷한 상황이다. 오버워치의 경우, 현재 패키지 방식으로 게임을 판매하고 있다. 한번만 게임을 구입하면, 평생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스킨 등을 유료로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직장인 김소정(가명·27)씨는 “국산 게임은 사실상 과금 없이는 즐기기 어렵다”며 “과금 유도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게임성을 높여서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과금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산 게임이 강세를 보이던 모바일게임에서 마저 외산게임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중국 게임사가 개발한 모바일게임 ‘소녀전선’이 있다. 소녀전선은 ‘그리핀 & 크루거’와 ‘철혈 공조’라는 민간군사기업간 갈등을 배경으로 하는 수집형 전략 역할수행게임(RPG)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과금 체계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분유료화 도입 이후, 게임사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쓰게 만들까’에 대해서만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게임이 재미있으면, 알아서 돈을 쓰게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게임의 경우, 초반 높은 게임성에도 불구 과도한 과금 체계에 지친 유저들이 게임을 떠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게임 ‘리니지M’ 역시 과도한 과금 체계로 인해 유저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 커뮤니티에는 과도한 과금체계에 대한 불만 게시글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원작 리니지1을 10년간 플레이 했다는 직장인 김모씨는 “과거 리니지1에 대한 추억이 있어 리니지M을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10만원 이상을 결제했다”며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니, 10만원 정도로는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도 힘들었다. 제대로 레벱업을 하기 위해선 매달 3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금은 결국 게임을 접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부분 유료화 모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과금 유저와 비과금 유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식”이라며 “다만 최근들어 과금 유도가 과해지면서 유저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특히 뽑기 시스템의 경우, 폐지하거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