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총회 열고 정관변경 후 신청해야…수장 없는 산업부와 교감 없어 승인 힘든 탓
전국경제인연합이 이름을 바꾸고 혁신하겠다고 외친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개명 작업의 첫 단계인 이사회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3월 이름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4대그룹(삼성‧현대차‧SK‧LG)이 탈퇴하고 절체절명 위기를 맞았을 때 나온 쇄신안이라 눈길을 끌었다. 당시만 해도 금방 이름을 바꾸고 혁신 작업이 착착 진행될 줄 알았지만 4달 째 모든 상황이 그대로다.
전경련이 아직도 이름을 못 바꾸고 있는 이유는 이사회를 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명칭을 바꾸려면 정관 변경을 위해 이사회를 열어야 하지만 쉽사리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변경된 정관은 산업부가 승인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이사회 총회를 열어 정관 변경을 하고 주무부처에 변경 신청을 하는 게 공식적인 절차지만, 통상 산업부와 교감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변경된 정관을 신청해봐야 승인을 얻기가 힘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산업부 장관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총회를 열고 정관 변경을 해 봐야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경련에서도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되면서 조직내 불안감만 커져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재계 및 정치권에선 전경련의 운명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보다 현 정권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 후보자는 19일 청문회에서 ‘장관이 되면 전경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국정농단을 했다는 사실은 부적절하다”면서도 “법과 원칙 테두리 안에서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산업부의 새 수장이 유력한 인사가 전경련 해체와 관련, 유보적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정치권 및 재계에선 백 후보의 발언은 곧 스스로 의지를 갖고 해당 사안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 후보자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로 스스로 적극적으로 전경련 해체 등에 나서기 보단, 정부의 정책 기조 및 방향에 따라 중대사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경련 승인 여부는 후보자 보다 윗선 의지에 따라 결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윗선은 문재인 정부, 즉 청와대 의중이 중요하단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 해체 가능성을 예단하기에는 아직은 불확실한 상태다. 사단법인인 전경련을 해체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민간단체를 해산하려하면 자칫 위헌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설립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할 경우 해체할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 백 후보자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결국 국정농단에 전경련이 얼마나 깊게 연루됐는지 여부를 말한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전경련 직원 중 기소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실상 아직까진 강요 및 압박에 의해 최순실 재단 지원 모금을 한 피해자 위치에 있는 셈이다. 특검은 미르 모금은 기업들이 강요에 의해 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전경련이 최순실 재단 모금을 주도했다고 해서 무작정 해체시키긴 힘든 노릇이다. 국회 산업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전경련의 운명은 산자부 장관이 결정된 후 늦어도 올 하반기 안에 결정이 날 전망이다.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관련, “혁신과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