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인수효과 없고 향후 상황도 불투명…경쟁사 및 中 메모리 패권 견제 성격 커

최태원 SK회장. / 사진=뉴스1, 디자이너 조현경

SK하이닉스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들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일각에선 SK하이닉스가 직접적 인수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관점을 달리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공격이 아닌 방어적 측면에서 보면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시바 인수전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한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우는 듯 했다. 당시 도시바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 임직원 고용승등 측면에서 가장 좋은 제안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의 경쟁자 웨스턴디지털(WD)이 소송 등으로 끊임없이 도시바를 흔들어댔다. 특히 한미일 연합에 도시바 매각을 반대하며 SK하이닉스가 해당 연합에 포함된 것을 걸고 넘어지기도 했다.

결국 게임은 다시 혼전이다.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 뿐 아니라 대만 홍하이 와도 다시 협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판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SK하이닉스는 이제 참여 방식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엄밀히 말하면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에 성공한다 해도 당장 실익은 없다.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베인캐피탈에 융자를 제공하는 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도시바 낸드플래시 물량을 가져와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시나리오는 너무 먼 이야기다. 일부에선 베인캐피털로부터 몇 년 뒤 챙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 내다보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큼에도 SK하이닉스가 사력을 다하는 것은 직접 점유율을 늘리는 측면보단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아직 컨소시엄에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과연 제품개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참가한 것은 도시바 메모리가 경쟁사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분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일 연합이 선정된다 해도 지분을 가져가는 것은 베이캐피탈이지 SK하이닉스가 아니다”며 “훗날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때 어떻게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일이고 결국 다른 곳으로 도시바가 넘어갈 경우를 우려해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는 뚜렷한 제로(0)섬 게임이다. 어느 한 쪽의 점유율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낸드플래시 2위 사업자인 도시바를 인수하면 단번에 삼성전자와 2강 체제를 구축하게 되고 여기에 끼지 못한 나머지 업체들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특히 업계 3위인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점유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견줄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올 1분기 낸드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7%로 1위를 달리고 도시바(17.2%), 웨스턴디지털(15.5%), SK하이닉스(11.4%) 순이다.

특히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한 이유 중 하는 중국, 대만 등으로 메모리 사업의 주도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반도체 육성정책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미국 등 각국 견제에 막혀 좀처럼 메모리 부문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만약 중국 자본이 도시바를 잡게 된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나아가 호황기를 마감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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