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소진이 만든 기술의 범람…가격 8930만~1억790만원
다섯 번째 세대교체, 랜드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에는 ‘너는 할 수 있다’는 정언(定言)이 서렸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피로 사회>에서 너는 할 수 있다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실업자도 자신을 소진시키는 병에 걸린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의 첨단 오프로더, 올 뉴 디스커버리에는 능력의 소진이 만든 기술의 범람이 있었다.
디스커버리는 30년 전 랜드로버가 디펜더의 강인함과 레인지로버의 편의성을 섞어 내놓은 모델이다. 정통 오프로더와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사이에서 이뤄진 저울질이 지난 30여년 간 디스커버리를 지탱해 온 핵심인 셈이다. 랜드로버는 그러나 8년 만에 꺼내든 5세대 디스커버리, 올 뉴 디스커버리를 저울에 올려놓는 대신 저울 자체로 만들었다.
랜드로버는 올 뉴 디스커버리 한쪽에 편의성을 잔뜩 싣고, 전자제어장비로 강인함의 균형을 찾고 나섰다. 랜드로버는 필요 없어 보이는 편의시설까지 올 뉴 디스커버리 곳곳에 배치하기 위해 뼈대부터 바꿨다. 올 뉴 디스커버리는 전통적인 오프로더 생산 방식인 프레임 바디가 아닌 모노코크가 적용됐다. 모노코크 바디는 연료 효율이 더 뛰어나고 공간 확보가 유리하다.
소리를 지우기 위해 각진 외관마저 지워버린 올 뉴 디스커버리를 만나 서울에서 양평까지 왕복 140㎞를 달렸다. 중간엔 해발 822m 대부산을 올랐고, 유명산 자연 구조물을 건넜다. SUV를 핵심에 놓은 오프로더가 변화의 도정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수혈했을 때, 산자락에 선 오프로더는 흙길 위에 포장도로를 세공했다. 직관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은 애초에 없었다.
전반적으로 곡선을 살려 날렵해진 자태는 레인지로버인지 디스커버리 스포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덕분에 0.33Cd로 낮아진 공기저항계수는 고속 주행 시 뚫어내야 할 압력 자체를 줄여 주행 정숙성이 개선됐지만, 정통성을 잃은 뒷맛은 씁쓸하다. 4세대 디스커버리4의 직각에 가까웠던 C필러는 패밀리 룩을 따라 사선으로 변했다. 세로 형태 테일램프는 가로가 됐다.
새로 더해진 리모트 인텔리전트라는 첨단 시스템이 올 뉴 디스커버리 존재를 증명한다. 리모트 인텔리전트는 스마트폰과 연동해 2열과 3열 시트를 원격으로 접었다 펼 수 있다. 코스트코에서 혹은 이케아에서 본인도 모르게 담아버린 짐의 양을 분석해 3열만을 접어둘 수도 2열만을 접어둘 수도 있다. 오프로드를 달리고 돌아왔다고 해도 방점은 쇼핑의 ‘편리’에 찍힌다.
3.0ℓ V6 터보 디젤 엔진을 얹은 올 뉴 디스커버리 론치 에디션은 도로 위에서도 편리했다. 버튼 없이 멀끔한 센터페시아는 터치 스크린으로 모든 조절과 조작이 가능케 만들어줬다. 2열 좌석 헤드레스트가 가린 후방 시야는 터치 한번으로 개선 가능했다. 시트 폴딩이 주행 중에도 작동하는 덕이다.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61.2㎏·m의 힘은 조용히 도로를 갈랐다.
3.0ℓ V6 터보 디젤 엔진은 5m 거구를 빠르게 밀어붙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올 뉴 디스커버리는 모노코크 프레임 바디와 차체의 85%에 달하는 알루미늄 소재 적용으로 디스커버리4보다 450㎏가량 무게가 줄었지만, 여전히 2500㎏을 넘는 무게를 지녔다. 8단 자동변속기 또한 부드러웠다. 랜드로버 관계자는 “변속기는 200㎜/s 내에 신속하게 변속이 이뤄지고, 공회전 제어 장치와 냉각수 온도를 올리는 웜업 시스템으로 효율성을 개선됐다”고 했다.
조용하고 편안한 주행에는 에어 서스펜션도 한몫 했다. 에어 서스펜션은 롤스로이스 같은 럭셔리 세단에 장착돼 부드러운 주행감을 위한 조율에 역할한다. 인상적인 건 고속에서의 정숙성이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속도를 높여도 엔진음만 그윽하게 들릴 뿐 차체와 실내는 동요하지 않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8.1초다.
돌과 자갈이 흩뿌려진 비포장도로에서도 편안함은 이어졌다. 디스커버리의 에어 서스펜션은 오프로드에서의 투박한 승차감을 편안함으로 바꿨다. 여기에 더해진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은 자갈·눈, 진흙, 모래, 바위 등으로 세분화 돼 다이얼을 돌려두는 것만으로 엔진 반응과 변속기 반응을 알아서 조절했다. 차량은 바퀴에 닿는 지면에 동력을 자동으로 넣고 또 끊는다.
오프로드 주행에선 속도에 따라 차고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차고 조절 범위는 기존 105㎜에서 115㎜로 시속 50㎞를 기준으로 이보다 빠르면 낮아지고, 이보다 느리면 다시 높아진다. 한쪽 바퀴가 접지력을 잃고 떠 있으면 나머지 서스펜션이 지능적으로 작동해 차체를 떠받든다. 신형 디스커버리의 지상고는 283㎜, 접근각은 34°, 브레이크 오버각은 27.5°, 이탈각은 30°다.
도강 높이는 900㎜다. 900㎜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훌쩍 넘어 물이 들어도 끄떡없다는 의미다. 앞부분이 물에 잠겨도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설계됐다. 가지 못할 길이 아니면 갈 수 있고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일반 도로같이 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차선을 유지하고 다른 차량과 충돌을 방지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 정도면 어디든 편리하다.
돌아보면 랜드로버는 애초에 그랬다. 직관적인 디자인에 실용성을 강조한 미국형 SUV와 달리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필요할 수도 있는 것, 편한 것뿐만 아니라 편해질 수 있는 것, 쓸모없어도 예쁜 것을 모두 담는다. 시동을 켜면 올라오는 다이얼식 기어노브는 쓸데없이 멋있었다. 사막을 횡단할 일 없지만, 사막 위를 달리고 있을 올 뉴 디스커버리에는 패들시프트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합쳐진 랜드로버 5세대 디스커버리, 올 뉴 디스커버리는 ▲ SD4 HSE 8930만원 ▲ TD6 HSE 9420만원 ▲ TD6 HSE 럭셔리 1억650만원 ▲ TD6 퍼스트 에디션 1억560만원 ▲ TD6 론치 에디션 1억790만원이다. 멋있어서, 예뻐서, 필요할 수도 있어서 사기엔 분명 비싸지만, 멋있어서, 예뻐서, 필요할 수도 있어서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