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예상 웃돈 설비투자…도시바 매각 지연 상황서 독주 공언, SK 대응도 주목
가히 평택발(發) 폭풍우다. 삼성전자가 평택 반도체 라인 가동에 돌입하면서 앞으로 14조원 이상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혀서다. 이렇게 되면 이미 1위인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다시 한 번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업계가 그야말로 삼성 vs 비(非)삼성의 구도로 굳어지는 셈이다.
도시바 인수전 결과에 따른 지각변동으로 삼성과의 격차를 줄이려던 기업들은 난감하게 됐다. 가뜩이나 도시바 메모리 매각 협상이 꼬이는 와중에 일격을 당했다. 야심찬 추격자가 되려던 SK하이닉스도 새로운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한미일 컨소시엄에 발을 들이밀었지만 아직 가시적 결과가 나지 않은 점도 걱정거리다.
지난 4일부터 오늘(5일)까지 업계는 평택으로 뜨겁다. 부동산업계 얘기가 아니다. 반도체업계 얘기다. 삼성전자가 총 부지 면적 289만㎡(87.5만평)에 이르는 평택 반도체 라인의 본격가동에 들어가면서 37조원에 이르는 투자계획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초 업계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감 중인 상황에서 내놓은 복안이란 점도 관심거리다.
이중 대부분이 최첨단 V낸드 양산 역할을 맡은 평택 라인을 위해 쓰인다. 삼성전자는 평택 1라인에 대한 증설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투자한 돈을 포함해 2021년까지 30조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평택 1라인에 지금까지 쓰인 돈은 15조6000억원이다. 여기다 14조 4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추가로 투자하는 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2020~2022년을 전후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한풀 꺾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초호황 이후까지 감안해 통큰 투자를 단행한 셈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평택 공장 가동만으로도 삼성전자가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생산량은 월 45만장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가동을 시작한 평택 공장 1층에 이어 새로 신설할 2층까지 정상가동하면 생산량은 월 40% 안팎까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최대 70만장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라이벌 업체들에 2~3배 앞서는 수치다.
일각에서는 낸드플래시 초호황이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에 의존해왔다는 점을 근거 삼아 생산량 증대가 꼭 호재는 아니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이 앞선 기술력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64단 3D 낸드 양산과 함께 5세대 96단 3D 낸드 양산을 위한 적층(쌓아올림) 원천 기술도 확보해 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팔아야 할 쪽이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재 35% 안팎인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점유율이 최대 50%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추가투자를 공언하면서 업계는 다시 ‘삼성판’이 됐다. 과반 점유율을 향해 달려가는 삼성과 非삼성(도시바, 웨스턴디지털, 마이크론, SK하이닉스) 구도로 회귀한 셈이다. 반면 도시바발 지각변동 가능성은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바 메모리 매각 과정도 계속 변수가 돌출하고 있어서다.
앞서 도시바는 지난달 28일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을 상대로 1200억엔(한화 1조2227억원) 규모의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또 도시바는 WD가 미국서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해당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 법적 관할이 없다”며 정당성 시비도 제기하고 있다. 관련 첫 심리는 14일에 열린다. 일종의 맞소송 모양새다. 매각협상이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시바 메모리를 지렛대 삼아 삼성전자를 추격하려던 SK하이닉스도 별개의 대책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한미일 컨소시엄이 계획대로 내년 3월 이전에 도시바 메모리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융자 제공자의 신분이다. 당장 시장 내 점유율 격차를 줄이는 동력으로 삼기 어렵다.
다만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 지분 중 최대 33%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베인캐피털이 확보한 지분을 일부 혹은 전량 인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단기간에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1위 삼성전자가 판을 또 다시 뒤흔드는 상황에서 맞대응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