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청행태 겨냥 새 먹거리 찾기…국내선 ‘경계짓기’ 탓 쉽지 않아

스냅챗의 모회사 스냅이 타임워너와 손을 잡았다. / 사진=셔터스톡

아이폰과 스냅챗 이후의 히든카드는 콘텐츠일까?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애플과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의 모회사 스냅이 콘텐츠 제작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애플은 소니TV 출신의 고위임원 두 명을 영입해 비디오사업 총괄을 맡기기로 했다. 스냅은 대표적인 콘텐츠공룡 타임워너와 손잡았다. 모바일 시대의 총아인 애플과 스냅이 텔레비전 시대의 히어로인 소니TV와 타임워너 손을 잡은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동력은 단연 모바일 시청 행태로의 변화다. 애플과 스냅이 자체 플랫폼에 실어 나를 오리지널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미국서는 차세대를 한 치라도 앞지르려는 경쟁이 뜨겁지만 국내 사정은 다르다. 아직은 경계 짓기가 뚜렷한 탓에 해외처럼 담장 바깥을 넘어가는 시도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사진‧동영상 공유 모바일 메신저인 스냅챗의 모회사 스냅이 타임워너와 손잡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앞으로 2년간 스냅챗에서의 광고와 오리지널 동영상 제작을 위해 1억 달러(약 1139억원) 규모의 협상을 지난 19일(현지시간) 체결했다. 규모가 오롯이 설명하듯 스냅이 새 먹거리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설정했다고 공언한 셈이다. 3월 기업공개(IPO) 이후 마땅한 반등 기미를 못 찾던 스냅으로서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을 종합하면 스냅은 올해 말까지 3~5분짜리 동영상을 매일 2~3개 씩 방송할 계획이다. 그간 스냅은 NBC, ABC, ESPN 등의 방송사들과 비슷한 형태의 동영상을 만들어 방영해왔다. 여기에 콘텐츠 공룡 타임워너까지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타임워너는 할리우드 케이블방송 HBO와 투자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케이블 뉴스채널 CNN 등을 보유하고 있다. 타임워너 입장에서는 모바일 시청행태에 맞는 플랫폼을 우군으로 얻었다. 앞서 타임워너는 2014년 20세기폭스사의 인수 제안을 거부했었다. 20세기폭스는 타임워너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기반 기업이기 때문이다. 대신 최신 미디어 소비환경에 맞는 스냅을 얻으면서 시너지를 내게 됐다.

비슷한 시기 애플도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줬다. 애플은 소니 픽처스 TV의 고위급 임원 2명을 영입해 비디오 사업 부문 총괄을 맡긴다고 16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에 애플에 합류한 제이미 일리크트와 잭 반 앰버그는 소니에서 ‘브레이킹 베드’, ‘더 크라운’ 제작에 핵심적으로 관여해왔던 인물들로 알려졌다.
 

애플이 소니TV 출신 고위 임원들을 영입해 비디오 사업부문 총괄을 맡겼다. 애플 뮤직이 핵심 플랫폼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사진=셔터스톡

그간 애플은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해왔다. 애플을 둘러싼 인수합병(M&A) 설도 끊임없이 터져 나왔었다. 지난해 5월 2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이 타임워너에 인수를 제안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핵심관계자 말을 인용해 애플에서 아이튠즈 스토어와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 등을 총괄하는 에디 큐(Eddy Cue) 수석부사장이 타임워너 기업전략총괄을 만나 인수를 제안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후에도 ‘애플의 넷플릭스 인수설’, ‘애플의 디즈니 인수설’ 등이 주기적으로 외신을 달궜었다. 물론 이 보도들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애플에 합류한 소니 출신의 두 전문가는 에디 큐 부사장 직속으로 일한다. 애플이 시험 형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놓는 플랫폼이 애플뮤직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에디 큐가 애플뮤직을 ‘애플판 넷플릭스’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애플이 직접 소니TV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M&A설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애플과 스냅 모두 모바일 시대를 동력 삼아 규모를 키워온 기업이라는 점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애플은 ‘아이폰 혁명’으로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스마트폰으로 뒤바꿨다. 스냅은 사진과 동영상을 간편하게 공유하는 메신저로 단기간에 상장 기업이 됐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 이후’가, 스냅은 ‘스냅챗 생존’이 고민이다. 애플은 다른 플랫폼(애플뮤직)을 통해 콘텐츠를 팔고 이를 아이폰 생태계와 연결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스냅은 시장에 차고 넘치는 메신저들과 차별화를 위해 10분 이내 동영상을 ‘제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방법은 역시나 모바일이다. 설사 아이폰과 스냅챗이 아니더라도 이미 시청행태 자체가 모바일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과거와 달리 요새 ‘텔레비전 보세요’라고 질문은 ‘텔레비전을 활용해 콘텐츠를 보세요’라는 물음과 같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콘텐츠 소비자들은 넷플릭스, 왓챠에 거의 가입돼있고 남는 시간 상당수를 소셜미디어를 하며 보낸다”며 “결국 모바일 중심 플랫폼 활용이 많아지다 보니 관련기업들로서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서는 애플에 스냅까지 콘텐츠 역량 키우기가 그야말로 유행이지만 한국 사정은 다르다. 해외서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방송제작 기반 기업(타임워너)과 모바일 메신저(스냅)가 1000억원 규모 협상을 타결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지상파 방송사와 메신저 기업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대규모 계약에 나서는 건 아직까지 상상하기 힘들다. 여전히 ‘경계짓기’가 뚜렷해서다.

국내 한 방송사 관계자는 “수출의 경우를 예로 들면, 방송사마다 플랫폼 관리부서, 정책부서, 수출부서가 다 따로 일하는 형국”이라며 “가령 동남아에 플랫폼을 통해 진출하면 당장 콘텐츠 판권에 영향을 미쳐 수출액이 줄어든다. (이처럼) 방송사 내부에서도 경계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른 탓에 (해외처럼) 담장 바깥을 넘어가려는 시도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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