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상권과 상생 공약에도 또 ‘영업 제한’?
면세점 규제에는 딜레마가 있다. 중소상공인을 위한다는 게 면세점 영업제한 및 의무휴일제를 도입하자는 측 주장이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이 같은 규제가 면세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막아 영업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것이란 부정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규제의 본 취지인 ‘지역상권 살리기’가 면세점 특허심사위 평가 항목 중 하나인 ‘지역상권과의 상생’과 중첩돼 면세점업계가 이중으로 분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업체는 면세점 특허를 따기 위해 ‘지역상권 살리기’에 대한 공약을 이행해야 하는 동시에,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문까지 닫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됐다.
현재 국회에는 대형마트 등에 적용하는 의무 휴일제 등 영업제한을 면세점까지 확대하자는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김종훈 무소속 의원 등 국회의원 10인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면세점을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키며, 추석과 같은 설날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게 하는 등 영업시간제한 및 의무휴업제도를 정비하려 한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더불어 시내면세점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공항 면세점은 오후 9시 반부터 다음날 아침 7까지 영업이 제한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 면세점 막으면 중소기업도 힘들어져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국내 1·2위 면세점인 롯데와 호텔신라 등은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덩치 큰 대형 유통업체만 손해를 입는 게 아니다. 동시에 면세점에 물건을 대는 중소기업도 규제발 유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면세점에 입점한 중소기업체들에 영업제한이 가해지면 그에 해당하는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업계에 따르면 면세점이 매월 일요일 하루와 설날, 추석 등 총 14일의 강제 의무휴업을 이행할 경우, 약 200여개의 면세점 입점 중소·중견 제조업체는 연간 약 52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볼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중소기업이 지난해 면세점 납품으로 벌어들인 총매출(약 1조3635억원)과 일평균 매출(37억3600억원)을 토대로 추산한 값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상공인을 살리겠다면서 역설적으로 약자에게 손해가 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 지역상권 위한다며 면세점 ‘이중규제’
면세점업계에서는 ‘지역상권과의 상생’이 면세점에 두 번 강조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관세청은 2015년 면세점 특허심의 평가표를 마련하면서 ‘주변 상권 활성화’도 평가 항목에 넣었다. 관세청의 평가 항목은 총점 1000점 만점에 운영인의 경영능력 500점, 특허보세관리 역량 220점,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노력 정도 12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공헌도 12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 40점으로 구성된다.
이에 업체들은 앞다퉈 수백에서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상생 공약을 내놨다. 지난해 말 이뤄진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당시, 신세계면세점은 시내면세점 명동~신세계 면세점~남대문시장~남산으로 이어지는 관광 올레길을 구축하고 2020년까지 사회 공헌에 27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의 두타면세점 역시 영업이익의 10%인 5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지역상권을 위해 휴업까지 하라는 것은 면세점을 향한 ‘이중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 당시 주변 상권 활성화를 점수에 포함하고 다시 의무휴업을 지정해 기업들을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면서 “지역상권과 판매 품목 면에서 겹치지 않는데도 문을 닫고, 또 이들과의 상생을 약속했는데도 문을 닫아야 하니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