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크런치 모드 근무…“업계 종사자, 스스로 근로환경 개선 노력해야”
국내 게임업계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종사자 수는 오히려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늦은밤까지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는 게임업계의 열악한 상황을 빗대 ‘등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나마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열악한 게임업계의 근로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개선에 크게 기여한 단체가 있다. 바로 게임개발자연대다. 게임개발자연대는 노조가 전무한 게임업계에서 거의 유일한 대변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e는 19일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게임개발자연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게임개발자연대는 지난 2013년 설립됐다. 정식 사단법인 등록은 2014년이다. 열악한 게임개발자 처우 개선과 셧다운제, 게임 중독법 등 다양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체불임금 등과 관련해 노동부에 진정 넣는것을 도와주거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외주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직장내 성추행·성희롱 피해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고 있다.
게임업계는 근무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어떤 사례가 있나.
주로 다양한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소위 ‘크런치’라 불리는 집중 근무제도가 1년 이상 진행되고 있단 제보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제대로된 방향성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발매가 늦춰지면서 성과가 나오지 않게 됐고, 결국 크런치모드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상부의 개입이 이뤄지면서 개발 프로젝트가 꼬이는 경우가 많다. 실무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개발과정이 막연히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고된 업무에 시달리게 된다.
근로환경이 열악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게임산업 시작 부터가 주먹구구식이었다. 사실 대부분 업체들의 경우, 관리시스템 자체가 없다. 문제가 불거진 회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도제식으로 직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사수가 신입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일 못하는 후임으로 사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후임 역시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상황을 조율할 관리직이 있어야 하는데, 게임업계 중간 관리자는 게임출시만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 대형 개발사는 그나마 상황이 났지만, 그렇다고 노동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게임개발 작업이 최신 엔진의 등장으로 과거에 비해 쉬워지면서, 단순작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엔 숙련된 인력이 중요도가 높았다면, 이제는 영화 ‘모던타임즈’ 속의 나사 조이기와 같이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만 필요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개발자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 밖에 없다.
게임업계는 연봉 계약을 할 때, 주로 포괄임금제로 계약한다고 알려졌다. 포괄임금제의 개념과 문제점은 무엇인가.
포괄임금제 도입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사업장에서 일정 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당 50시간을 근무한다고 계약을 하면, 회사 입장에서도 돈을 지불하기 편하고 종사자 입장에서도 주당 40시간 일하고도 50시간치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업체들이 포괄임금제를 야근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상 대형 게임사의 경우, 포괄임금제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출퇴근 시간이 전부 기록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기록하기 어렵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업계 종사자들 스스로 포괄임금제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개발자들은 포괄임금제를 통해 추가근로수당을 다 받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업계 종사자들도 포괄임금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정치권 등에서 게임업계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근로환경이 어느정도 개선된 부분이 있나.
실제로 많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치 대통령 한마디로 지지부진 하던 사건에 대한 수사가 급전개되는 것과 비슷하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도 근로감독 제도가 있었지만,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정치권에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니, 근로감독이 바로 실시되지 않았나.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게임업계는 출시를 앞두고 대부분 ‘크런치 모드’라 불리는 집중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나.
사실 크런치모드는 어쩔수 없는 측면이 없잖아 있다. 한국은 게임 시장이 상당히 보수적이다. 유저들은 과거 하던 게임을 계속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모바일게임에서는 이 경향이 조금 옅어졌지만, 여전히 게임을 빨리 내서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게임의 재미가 비슷비슷하다면 유저들은 먼저 나온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크런치모드를 통해 게임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국내 게임업계의 경우, 크런치모드가 무분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게임출시에 임박해서만 크런치모드를 하는 것이 아닌 게임개발이 지연된 경우나 심지어 경영진 눈치를 보느라 크런치모드에 돌입하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법제도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으로 과한 야근을 막아햐 하는 것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크런치모드는 단순히 관행적으로 일을 더 시키기위한 마법의 단어로 쓰이고 있다. 정부는 그간 게임업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최근 게임업계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됐을 뿐이다. 정부가 먼저 할 일은 게임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정확한 조사다. 현재는 데이터가 많지 않다. 일단 임금 체불이나 불합리한 크런치모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법제도 등 도입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업계 종사자 스스로 노력해야할 부분은 무엇인가.
종사자들 스스로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재 업계 종사자들은 노동문제 등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특히 아직까지 노조가 없다는 사실이 게임업계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방증하는 셈이다.
물론 프로젝트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이직이 잦고 한 회사에 오래 있지 못하다는 점도 노조 설립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자발적인 참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개인대 회사로 업무에 대한 계약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회사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종사자간에 합리적인 계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게임개발자연대를 제외하곤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단체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사실 게임개발자연대는 자신들과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부 개발자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렇다고 비난하는 업계 종사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게임개발자연대가 없어졌을 때 어디에다가 노동문제를 하소연할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힘을 합쳐 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넣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하지 않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실시한 뒤에도 업계 종사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당황스럽다. 업계 종사자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