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 출격에 안이한 티볼리 대응…G4 렉스턴 상품성 논란 수습은 뒷전
쌍용자동차에게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시기가 도래했다. 새로운 효자 모델로 부상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해 9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새로운 플래그십 대형 SUV ‘G4 렉스턴’의 초반 흥행 추이도 예사롭지 않다.
티볼리가 생산 물량 확대에 크게 기여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면, 4천만원대에 달하는 G4 렉스턴의 성패는 향후 쌍용차의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제 겨우 재도약의 첫 단추를 꿴 쌍용차가 마치 경영 정상화 궤도에 오른 듯 자만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 차종들의 등장에도 볼륨 모델인 티볼리의 대응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안이하다. 수익성 개선의 첨병 역할을 맡은 G4 렉스턴의 출시 초기부터 불거진 상품성 논란 수습은 뒷전이다. 단 기간의 성취에 취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쌍용차의 재도약을 이끌고 있는 최종식 사장은 과거 현대차 근무 당시 미주법인 캐나다 담당 부사장, 미주 판매법인장 등을 거치며 자타공인 영업통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2015년 4월 전임 사장인 이유일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겨받으며 글로벌 SUV 전문회사로서의 도약을 이끌 중책을 맡고 새로운 수장에 올랐다. 2년여의 재임 기간 동안 최 사장은 쌍용차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 3월 말 2년 연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2009년 파업사태 위기를 극복하고, 티볼리의 개발을 주도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전임 이유일 부회장이 일궈낸 공(功)이 아직은 더 크다. 최 사장에겐 자신의 독자적인 경영 능력을 대내외에 검증받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최종 관문인 셈이다.
2010년부터 부사장직을 맡아 이 부회장을 조력해 온 최 사장의 공도 간과할 수 없다. 연륜과 경험을 살려 고객 니즈와 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코란도 C 등 상품성 개선 모델들도 선보였고, 야심작인 G4 렉스턴의 개발 단계부터 직접 관여하며 성공적인 런칭을 이뤄냈다.
하지만 쌍용차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일련의 성과에 도취한 듯한 인상이다. 무엇보다 경쟁 모델이 속속 시장에 가세하면서 입지를 위협받고 있는 티볼리에 대한 대응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최종식 사장은 이달 7일 열린 G4 렉스턴 미디어 시승행사에 참석, 기자들과 만나 “티볼리는 차별화된 상품성과 지금까지 쌓아온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이미 시장 기반을 구축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코나가 출시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15일 열린 제14회 자동차의 날 행사에서도 소형 SUV 1위 자리 수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티볼리가 소형 SUV 1위 자리를) 지켜낼 겁니다”고 거듭 자신했다.
현재 국내 소형 SUV 시장은 티볼리가 50%를 웃도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기아차 니로, 한국GM 트랙스, 르노삼성 QM3 등이 뒤쫓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13일 출격한 현대차의 첫 소형 SUV 코나가 변수다. 티볼리는 코나의 출격 예고로 대기 수요가 발생한 지난달 판매량(4724대)이 전월(5011대) 대비 300대가량 빠졌다. 아직은 여파가 크지 않지만 향후 코나의 신차 효과가 본격화될 경우 판매 감소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1~5월 티볼리의 국내 시장 판매량은 2만3811대로 쌍용차 전체 내수 판매량(4만2934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 14일부터 사전계약에 돌입한 코나는 이달 말 판매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코나는 사전계약 첫 날 2500여대에 달하는 계약고를 기록했다. 티볼리가 사전계약 첫 날 기록한 800여대를 3배 이상 웃돈다.
코나의 상품성이 티볼리를 상회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나는 기존 소형 SUV보다 높이는 낮추고 폭은 늘려 주행안정감을 높였다. 또 전면부 램프의 조형(造形)이 상·하단으로 분리된 독창적인 디자인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동력성능도 티볼리를 앞선다. 코나는 1.6 GDi 엔진, 1.6 디젤 eVGT 엔진 등 2개 엔진 라인업을 갖췄다. 1.6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27.0㎏.m의 힘을 발휘한다. 티볼리 가솔린보다 출력은 53마력, 토크는 11.0㎏.m 웃돈다. 코나1.6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0.6㎏f.m의 성능을 지녔다. 티볼리 디젤보다 출력이 23마력 높다. 토크는 동일하다. 소형 SUV 고객들이 구매시 중요하게 따지는 연비 부문도 코나의 압승이다. 코나 연비는 디젤 모델이 16.8㎞/ℓ(잠정), 가솔린 모델이 12.8㎞/ℓ(잠정)다. 티볼리 디젤은 14.7㎞/ℓ, 가솔린은 11.4㎞/ℓ다. 가격도 큰 차이가 없다. 자동변속기 장착 2륜구동 모델 기준 코나는 트림별로 1895만~2905만원에 책정될 예정이다. 티볼리는 1811만~2346만원이다.
소형 SUV 고객들이 디자인과 연비, 가격에 민감한 수요층임을 감안하면 향후 코나의 판매량 확대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특히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코나 신차 발표회에 연사로 나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정도로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가 코나의 초반 시장 장악력 강화를 위해 공격적인 판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내달 출시 예정인 기아차 스토닉에 기대도 높다. 스토닉은 코나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한다. 기아차는 또 스토닉을 고객 맞춤형 주문 제작이 가능한 차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구체적인 방식이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색상, 바퀴 등 선택사양을 늘리고 전용 튜닝 서비스도 제공할 전망이다.
쌍용차도 대책은 세웠다. 최종식 사장은 “(코나의 가세로)치열한 5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과 연식변경 등을 통해 상품성을 보강하고 마케팅을 강화해 방어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품성 강화 모델 만으로는 코나와 스토닉의 신차 효과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완성차업계 맏형이자 글로벌 판매량 5위의 현대차와 마케팅 측면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는 건 더 어렵다. 규모는 물론 투여되는 자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식 사장이 티볼리가 아성을 공고히 지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근거 가운데 현재 시장 점유율을 제외하고는 상품성과 브랜드 파워 등 대부분 수치화가 불가능한 잣대”라면서 “티볼리의 인기 요인이었던 가성비가 새로운 경쟁 모델들보다 크게 앞선다고 볼 수 없어 선두 수성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G4 렉스턴 상품성 논란…노조 불협화음도 불거져
G4 렉스턴의 판매 초기 불거진 상품성 논란도 걸림돌이다. G4 렉스턴에는 기존 모델에 들어갔던 2.2ℓ 엔진이 적용됐다. 성능 개선을 위해 최적화된 튜닝 과정을 거쳤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부족한 배기량과 엔진 스팩 탓에 고속 영역에서의 가속성능은 경쟁 차종 대비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최종식 사장은 “G4 렉스턴의 현 엔진사양은 최근 트렌드인 다운사이징 추세에 따른 것으로 주행성능에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면서 “고출력의 엔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만큼 이산화탄소(CO2) 배출량도 많아지는 만큼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G4 렉스턴은 최고출력 187마력, 최대토크 42.8㎏·m의 동력성능을 발휘한다. 기존 모델(178마력, 최대토크 40.8㎏·m)과 별 차이가 없다. 연비는 10.1~10.5 km/ℓ로 오히려 이전 렉스턴 W(11.6~12.0 km/ℓ)보다 떨어졌다. 이전 렉스턴 W에 들어간 2.2ℓ 4기통 디젤엔진을 적용하면서 성능에는 큰 개선이 없고, 효율성은 감소했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고효율·고연비가 핵심이다.
서스펜션 논란에 대한 서툰 대응도 문제다. 발단은 기본형 모델인 럭셔리와 프라임의 후륜에 적용된 5링크다. 3950만원부터 시작하는 마제스티와 4000만원대 중반에 달하는 헤리티지의 후륜에는 멀티링크가 적용된데 비해 기본형 모델에서는 이를 옵션으로도 선택할 수 없다. 5링크는 멀티링크와 같은 독립 서스펜션을 적용한 차보다 승차감이 떨어져 승용차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게 통설이다. 온로드에 최적화하는 세팅 과정을 거쳤다고 회사 측은 설명을 내놨지만, 태생적 한계에서 오는 승차감의 차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쌍용차는 서스펜션 이원화 논란이 수면 아래로 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엉뚱하게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는 최종식 사장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기본형 모델은 펀(Fun)한 주행질감을 즐기는 오프로드 선호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며 “반면 고급형 모델은 온로드 주행에서 편안한 승차감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객들의 선택은 쌍용차의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갔다. G4 렉스턴은 지난 4월 25일 공식 출시 이후 지난달 말 기준 23 영업일 동안 총 7500대의 계약고를 기록했다. 모델별 계약 비중은 최상위 헤리티지 트림을 선택한 고객 비율이 49%로 가장 높았다. 이어 마제스티 22%, 프라임, 19%, 럭셔리 10% 순이다. 4천만원대 이상의 고가 트림인 헤리티지와 마제스티 모델 계약 비중이 70% 수준에 달했다.
프리미엄 대형 SUV라는 차급을 선택한 고객들인 만큼, 어느 정도 비용 지출을 감수하더라도 멀티링크의 편안한 승차감을 선호한 것으로 풀이된다. 5링크에 대한 고객들의 편견 역시 생각보다 견고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쌍용차의 서스펜션 투트랙 전략이 주효할 지 여부도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 힘든 셈이다.
원만했던 노사 관계도 올해는 장담할 수 없다. 쌍용차는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무분규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 쌍용차 노조는 기본급 11만80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측과 기본급 5만원 인상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