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대책인 감정노동자 보호 법안 국회 처리는 여전히 난망…고객 갑질에 시달리는 근로자 보호 위해 사용자 책임 강화 시급
지난 1월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콜수를 다 못채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대해 13일 원청인 LG유플러스도 책임을 인정했다.그럼에도 콜센터 감정노동자에 대한 근본대책은 아직 없다.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감정노동자 보호법 등 법제도적 보호책 마련이 시급하다. 여야간 다툼이 있는 쟁점법안이 아님에도 새 정부 출범후 다른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태여서 국회에서 법안 논의 시기가 마냥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인 LB휴넷으로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을 나가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3학년 홍수연씨가 자살했다. 숨진 홍 양은 부친에게 “콜(call) 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현장실습표준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수습기간 중에도 콜수 실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다섯달 만인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 실습생 사망사건 경과·교섭결과 보고회'에서 "저희 LG유플러스는 협력사 고객센터에서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유 부사장은 또 "6월 7일 합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인이 영면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유족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 부사장은 콜센터 상담사나 고객센터 운영에 대한 다각적 점검과 개선 대책 시행을 약속했다.
앞선 7일 대책위와 사측은 감정노동자 보호대책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사측은 전주시 감정노동 실태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정기적 외부 노동 감사 시행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운영중단 ▲유가족 배·보상 ▲시간 외 근무 중단 ▲일반상담업무와 영업상담업무 분리 등이 주요 합의 내용으로 발표됐다.
◇사고 재발 막으려면 '감정노동자 보호법' 마련 시급
사측이 사과를 했지만, 법제도적 보호책이 미비하다보니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비롯한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다수 계류돼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먼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산재법 개정안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명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려는 취지다.
또 한 의원은 ▲사업주로 하여금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 고객 등의 폭언, 폭행, 그 밖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고객응대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함으로써 감정노동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산안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산안법 개정안은 사업주로 하여금 고객 등의 폭언, 폭력, 괴롭힘 등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한 감정노동자에 대해 해당 고객 등으로부터의 분리와 업무담당자 교체,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식시간의 연장, 피해근로자에 대한 치료와 상담 지원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국회는 청문회와 추가경정예산안 등 현안처리와 국정과제 해결로 바쁜 모양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내용적으로 무리한 법안은 아니다. 쟁점도 별로 없기 때문에 각 당에서도 동의한다”면서도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는데다, 국정과제 등 당면한 현안이 산적해 있어 언제쯤 논의될지 당장 예측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