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승계 의혹 부인…오너 도덕성 논란에 AI 실적 호재도 부담

국내 최대 닭고기 유통업체 하림이 뜻밖의 악재에 직면했다. 총수인 김홍국 회장은 양계전통기업인 하림을 자산 규모 10조원, 재계 서열 30위로 키워내 올해 ​대기업집단에까지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여기에 이달 말 지주사 제일홀딩스의 코스닥 상장까지 앞둔 잘 나가는하림이지만 빗나간 자식 사랑이 발목을 잡게 된 모양새다. 김 회장이 장남 김준영씨에게 그룹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결국 사단이 났다. 25세 아들의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편법 증여’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적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실적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국가적 재앙의 반사이익을 누린단 점은 영 부담스럽다. 특히 자산10조 규모의 회사를 개인의 영역으로 삼고 우회적으로 2세 경영의 기반을 다진 의혹을 받고 있는 오너 일가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와 여권은 현재 김홍국 회장이 장남 김준영씨의 승계를 지원하고, 김씨가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단 의혹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앞서 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편법증여에 의한 몸집 불리기 방식으로 25살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며 하림을 대놓고 지목한 바 있다. 편법 승계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향후 하림의 신장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씨는 2012년 김 회장으로부터 비상장 계열사인 올품(당시 사명 한국썸벧판매) 지분 100%를 물려받으면서 올품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 고리의 정점에 서게 됐다. 현재 하림의 지주사인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김홍국 회장(지분율 41.78%)이지만, 아들 김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한국썸벧과 올품이 제일홀딩스 지분의 총 44.60%을 보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씨의 그룹 영향력은 아버지인 김 회장보다 더 큰 셈이다.

 

김씨가 비상장 계열사인 올품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낸 증여세는 100억원에 불과하다. 10조원 규모의 회사를 단 100억원으로 물려받았다는 비난이 빗발치는 이유다.

 

100억원을 마련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지난해 초 올품은 전체 지분(204000)30%에 해당하는 62500만주에 대한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기업은 이 과정에서 자본을 감소시킨 만큼, 주주에게 현금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올품은 주당 액면가 1만원보다 16배 비싼 주당 16만원에 지분을 매입했고, 이를 소각하며 발생한 약 100억원은 올품의 유일한 주주인 김씨가 받게 됐다. 김씨는 이 돈으로 상속세 1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올품 지분을 물려받은 이후엔 기업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했단 의혹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하림은 승계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증여가 이뤄진 지난 2012년 당시 하림그룹 전체 자산이 35000억원으로 중견기업 수준이었고, 올품 매출액이 증여 다음해인 2013년 크게 증가한 것은 같은해 올품과 한국썸벧 합병에 따른 매출액 증가 탓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법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오너 일가의 꼼수 승계로 불거진 도덕적 비난은 마땅히 피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들어 재벌 개혁을 기치로 더 엄격해진 사정당국의 시퍼런 서슬도 변수다. 현재 공정위는 하림그룹의 편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의혹 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김홍국 회장 부자의 승계 논란으로 인해 하림의 기업 이미지에 대한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제일홀딩스 상장이나 하림의 매출에 직접적인 큰 영향이 있진 않을 것”이라면서 하림은 B to C(기업 대 소비자 간 거래)뿐 아니라 B to B(기업 대 기업 간 거래)도 병행하는 데다, 오너 일가의 도덕성 논란이 닭고기 수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한편 AI 여파로 치솟는 닭고기값은 하림 실적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가 상업 농가가 아닌 개인 농가 위주로 퍼져있어 닭고기 공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공급이 줄더라도 닭고기 수요가 많은 6~8월에 시세가 오르게 되면 실적 상승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하림은 AI 덕에 닭고기 가격이 급등하자 수혜를 입은 바 있다. 지난해 11AI가 발생한 이후 육계 약 300만마리가 폐사하며 닭고기 공급량이 줄자, 가격이 상승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지난해 하림은 전년보다 300% 이상 증가한 영업이익 20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8260억원으로 전년 대비 3.9%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175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복이 있고, 치맥의 계절이라 불리는 여름에는 닭고기 수요가 늘어난다. 지금 AI 여파로 닭고기 대란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보니, 수요는 많은데 AI로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당연히 비싼 값에 많은 고기를 팔 수 있어서 기업엔 호재라고 설명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2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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