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외모, 강력한 동력성능...부족한 헤드룸은 아쉬워
기아자동차가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야심차게 선보인 고성능 스포츠세단 ‘스팅어’가 흥행가도에 제대로 올라탔다. 스팅어는 기아차 브랜드 최초로 개발된 후륜구동 고성능 스포츠세단으로, 향후 출시될 고급차 라인업의 첫 번째 모델이다. 기존 기아차 모델과 달리 독자적인 엠블럼도 적용했다.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7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19 영업일 동안 총 누적계약대수가 2700대에 달한다. 일평균 140대가 넘는 계약이 이뤄진 셈이다. 기아차는 올해 스팅어를 매달 1000대 이상 판매한다는 목표다. 초반 계약 추이는 월간 판매목표를 2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수요 고객이 국한돼 있는 고성능 스포츠세단 모델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실제 경쟁 차종인 BMW 4시리즈 그란쿠페의 올해 월평균 판매량은 150여대 수준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스팅어의 계약 고객을 분석한 결과 수입차 구매를 고려하던 30~40대 고객의 유입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며 “차별화된 디자인과 고성능의 엔진 스펙에 공격적인 가격 정책이 더해지면서 경쟁 차종 대비 높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타깃층에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스팅어의 계약 고객 중 65%가 30~40대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남성 고객 비중이 84%로 압도적이었다.
스팅어의 시승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리조트를 왕복하는 약 170㎞ 구간에서 이뤄졌다. 기자는 원주로 향하는 편도 약 85㎞ 구간을 시승했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인 3.3터보 GT의 풀옵션 2륜 모델이었다.
외관 디자인은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전면부에는 패밀리룩인 호랑이코 형상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기아차의 다른 모델들보다 낮고 좌우로 길게 뻗어 있고, 여기에 범퍼 하단의 대형 인테이크 그릴이 조합돼 강렬한 느낌을 더했다. 측면부는 긴 보닛에 앞쪽 오버행(overhang, 앞뒤 차축에서 차량 끝단까지 거리)은 짧게 빼고 뒤는 길게 만들어 차체가 전체적으로 낮게 깔린듯한 느낌을 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인상이다. 후면부 곡선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와 타원형 듀얼 트윈 머플러도 멋스럽다.
운전석에 앉자 나파 가죽 세미 버킷시트의 온 몸을 감싸안는 듯한 착좌감이 만족스럽다. D컷 스티어링휠은 차량의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했고, 스포츠 주행시 사용 빈도가 많아지는 패들시프트도 조작하기 용이한 위치에 배치됐다. 속도와 경로, 차간 거리 등 주행 정보를 제공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주간 주행에도 눈에 잘 들어올 정도로 시인성이 높다. 스티어링휠에서 조수석으로 길게 뻗은 항공기의 날개를 형상화한 대시보드와 스팅어에 첫 적용된 항공기 엔진을 닮은 스포크 타입의 원형 에어밴트(송풍구)도 이채롭다.
뒷좌석 레그룸도 넉넉한 편이다. 스팅어의 휠베이스(축간거리)는 2905㎜로 BMW 3시리즈(2810㎜),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2840㎜)보다 길다. 다만 성인 3명이 앉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선이 완만하게 떨어지는 패스트백 스타일을 적용한 탓에 뒷좌석 헤드룸도 부족하다. 키 177cm의 기자가 앉았을 때 무릎공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머리 위 공간은 빠듯한 느낌이다.
시동을 걸고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에는 튀는 외모 탓에 주변 차량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울 만큼 한껏 느낄 수 있다. 제2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변경한 뒤,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며 급가속을 시도하자 순식간에 시속 100㎞를 넘었다. 1.7톤에 달하는 공차 중량이 무색할 정도로 가볍고 빠르게 튀어 나간다. 스팅어의 제로백(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9초다. 국산차 가운데 가장 빠르다.
특히 스팅어에는 국산차 최초로 ‘런치 컨트롤(Launch control)’ 시스템도 적용됐다. 이 시스템은 출발 전 엔진의 회전수를 출발과 동시에 곧바로 최대토크를 발휘할 수 있는 수준에 미리 맞춰 가속력을 극대화해 준다. 실제 이날 정차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가속페달을 천천히 끝까지 밀어붙이자 rpm(분당 회전 수)이 치솟기 시작했다. 2000rpm 언저리에 도달한 것을 확인한 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차체가 마치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는 것처럼 노면을 박차면서 순간적으로 튕겨나갔다. 이내 전방에 차량이 보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노면 상태와 도로 여건이 갖춰진 곳에서는 공식적으로 밝힌 제로백에 근접할 듯 하다.
고속 구간에서도 가속페달을 밀어붙이는 대로 즉각 반응하며 치고 나간다. 스팅어 3.3터보 GT는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m의 동력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에 맞물린 현대파워텍이 개발한 후륜 8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도 만족스럽다. 고속 주행에서도 부드러운 변속감을 제공한다.
고속 주행시 들리는 엔진 사운드는 실제 배기음을 즐기는 운전자들에게는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조금 더 거칠고 박력있게 설정해도 좋았을 법 하다. 이 차에는 스피커를 통한 가상 엔진음과 실제 엔진음을 합성, 5가지 각 주행모드 별 특성에 맞는 엔진 사운드를 만들어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액티브 엔진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정숙성과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평균 시속 150㎞를 넘나드는 고속 주행에서도 가속 페달에 힘을 줄 때마다 울리는 엔진음을 제외하고는 풍절음 등 외부소음의 유입은 거의 없다. 오히려 노면음이 도드라진다.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는 데도 불편함이 없다.
하체는 단단하게 세팅된 편이다. 고속으로 질주할수록 차체가 낮게 깔렸고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적용돼 회전 구간에서도 단단한 접지력으로 날카롭게 코스를 선회한다. 브레이크 반응도 묵직하고 강하다. 적절한 무게감의 스티어링휠은 고속주행이나 코너링시 안정감을 준다. 기아차는 스팅어에 신속한 응답성을 발휘하는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휠(R-MDPS)’ 시스템을 적용했다.
컴포트로 주행 모드를 바꾸면 배기음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서스펜션도 부드러워진다. 전반적으로 주행질감이 한층 유연해진다. 남성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풍부한 퍼포먼스와 패밀리카로서의 활용성이 공존하는 셈이다. 스팅어에는 스포츠와 컴포트, 에코, 스마트, 커스텀 등 총 5가지의 운전 모드가 적용됐다. 각 모드별로 전자제어 서스펜션, 스티어링 휠, 엔진변속 패턴이 차별화된다.
스팅어에는 부분적인 자율주행이 가능한 '드라이브 와이즈'도 적용됐다. 기아차 최초로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도 포함됐다. HDA는 기존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과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LKAS)'을 결합시켜 한 단계 발전시킨 기능이다. 실제 이날 시승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계기판에 'HDA' 표기가 점등된다. 시속 100㎞로 속도를 설정한 뒤 표기가 'AUTO'로 변경되면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도 된다. 전방 카메라와 레이더 등 센서를 통해 차간거리 제어는 물론 차선 유지와 가감속, 조향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다만 준자율주행 기능인 만큼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뗀 채 40초 정도가 지나면 경보가 울린다.
이날 시승차의 복합연비는 8.8㎞/ℓ다. 이날 시승 후 실연비는 8.3㎞/ℓ가 나왔다. 과속과 급제동을 거듭하는 시승의 특성을 감안하면 의미 없는 차이다.
스팅어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경쟁 수입세단 대비 1000만~2000만원 저렴하다. 제원상 경쟁 모델로 꼽히는 BWM 4시리즈 그란쿠페, 아우디 A5 등의 가격은 5000만원 중후반대부터 시작된다. 이날 시승한 스팅어 3.3터보 GT 풀옵션 모델의 가격은 5110만원이다. 스팅어의 트림별 기본 가격은 △2.0 터보 프라임 3500만원, 플래티넘 3780만원 △3.3 터보 마스터즈 4460만원, GT 4880만원 △2.2 디젤 프라임 3720만원, 플래티넘 4030만원이다.
경쟁차종의 범위를 세단인 BMW 3시리즈(4740만원~5590만원)와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4970만~6420만원)까지 더 넓혀도 여전히 저렴하다.
수입 경쟁모델들의 경우 가격 진입 장벽이 높아 일반적인 30~40대 가장들은 엄두를 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팅어는 조금만 무리하면 로망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초등학교 정도의 두 자녀 아이들을 둔 가정이라면 패밀리 세단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다. 특히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틈틈히 터보 차저의 퍼포먼스로 질주 본능을 깨우고픈 '착한 아빠'들에게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