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 업무 포기, 정책에 입장 반영 어려워…LG전자 ‘찬성’도 압박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4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갤럭시S8·S8플러스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사진=뉴스1

문재인 정부의 핵심 통신 공약인 휴대폰 지원금 분리공시제 도입 논란이 갈수록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본료 폐지 못지않게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분리공시제 도입을 반대해온 삼성전자의 경우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분리공시제는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전체 보조금 중 이동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따로 공시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휴대폰 구입 시 소비자가 지급받는 보조금은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A와 제조사가 제공하는 B를 합친 금액인데, 이 A와 B가 각각 얼마인지 공개하자는 것이다.

해당 제도 도입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제조사의 마케팅 전략이 고스란히 외부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휴대폰 제조사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얼마만큼 보조금을 주는지 공개되면 해당 기업들이 해외시장애서 가격전략을 펴거나 마케팅을 할 때 협상력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 기본료 폐지를 찬성하는​ 일부 정치권 인사들도​ 제조사의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  분리공시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제조사들은 분리공시제 도입이 공론화 될 때마다 사활을 걸고 강력히 반대해 왔다. 과거 정부에서 분리공시제 도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도 사실상 삼성전자가 해외시장 경쟁력 문제를 들어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해당 법안에 대해 논의했던 국회 미방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2013년 12월 23일) 내용 일부다.

소위원장 조해진: 이통사는 이 법안 전체에 대해서 이견이 별로 없는 것 아닙니까? 오로지 제조사의 이견이 문제지.
미래창조과학부통신정책국장: 제조사 중에도 삼성전자만….

문제는 이번엔 삼성전자가 의견을 피력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나서 자사의 입장을 설명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경영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책 도입 전 국회와 정부를 돌며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한다. 이것이 곧 대관 활동이다. 삼성은 최순실 지원 의혹으로 대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인 만큼,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정상적인 활동조차 쉽지 않은 상태다.

해당 업무를 하고 싶어도 이를 주도할 만한 조직도 없다. 국정농단 사태 후 대관업무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의 대관 전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다. 삼성은 올해 초 쇄신안을 내놓으며 대관 조직을 아예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정부와 국회가 해당 제도 도입을 추진할 경우 삼성전자 입장이 반영되기 힘들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LG전자가 공개적으로 분리공시제 찬성에 나선 것도 삼성전자를 압박하는 변수다. 앞서 LG전자는 분리공시제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전달했고, 더 나아가 판매장려금(리베이트)까지 분리공시제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은 “같은 사업을 하는 LG전자가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을 표명하면서 삼성전자는 더 이상 반대 논리를 펼쳐가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일단 국회에서 논의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과거보다 해당 제도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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