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부문에 5조원 투자로 미래 대비…울산 폭발사고 수습은 ‘지상과제’
오스만 알 감디 에쓰오일 대표이사는 국내 정유사 최고경영자(CEO)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지난해 9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지금까지 에쓰오일을 이끌고 있다. 알 감디 사장은 다른 정유사와 마찬가지로 비정유부문 비율을 늘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엔 5조원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에쓰오일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알 감디 사장은 지난 4월 울산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재임이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수장으로서의 평가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배당성향으로 인해, 매년 불거지는 국부유출 논란도 그가 짊어져야할 과제다.
◇유일한 외국인 CEO, 한국 문화 적응위해 ‘고군분투’
에쓰오일 최대주주는 사우디라아비아 국영기업 아람코(Aramco)다. 알 감디 사장은 아람코에서 25년간 일한 ‘아람코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석사를 취득한 뒤 아람코에서 생산, 엔지니어링 정비, 프로젝트 분야 업무를 수행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아람코와 미국 엑슨모빌, 중국 시노펙의 중국 합작 공장에서 기술기획 부문을 총괄하며 글로벌 경영 경험을 쌓았다.
2015년 9월 아람코 아시아 코리아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에쓰오일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알 감디 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하자마자 한국 이름부터 지었다. 명함에도 한국 이름을 함께 새겼다. 본명인 오스만과 비슷한 ‘오수만(吳需挽)’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탁월한 지혜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번영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알 감디 시장은 여타 정유회사 수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겨울철에 연탄배달 봉사활동과 난방용 등유를 후원하는 행사에 직접 참가하는가 하면, 신년에는 임직원 및 신입사원들과 산행 행사, 떡국 나누기 행사 등을 주도했다. 취임 후 첫 대외행사로 회사 인근 사회복지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외국인 CEO라는 약점을 극복하고자,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좋은 대외 이미지 쌓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알 감디 사장은 최근 석유화학에 5조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인 정유 석유화학 복합시설인 잔사유 고도화와 올레핀다운스트림(RUC & ODC) 프로젝트에 올해 2조6000억원을 포함해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RUC는 에쓰오일의 부가가치가 낮은 잔사유를 원료로 프로필렌과 휘발유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시설이다. ODC는 연간 40만5000톤의 폴리프로필렌(PP)과 30만톤의 산화프로필렌(PO)을 생산하는 설비다.
이번 사업은 에쓰오일 창사 이래 최대 신규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에쓰오일은 수익 창출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정유업계는 석유화학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1조6169억원 중 비정유사업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이번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알 감디 사장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인 셈이다.
◇울산공장 폭발사고로 최대 위기 맞아…국부유출 논란도 해결과제
탄탄대로를 걷던 알 감디 사장은 최근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에쓰오일이 5조원 가까이 들여 건설하던 울산 사업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1일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에 있는 에쓰오일 사업현장에서 110m짜리 대형 타워크레인이 유류배관으로 넘어져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협력업체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당일 에쓰오일의 울산 공사현장에 공사전면중단 명령을 내렸다. 사고 원인이 파악되고 사고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확보 등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모든 노동자는 공사작업을 멈춰야 한다. 업계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4명의 노동자가 중경상을 입은 만큼 작업중지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울산지부가 해당 사고는 시공사의 안전관리와 감독 부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종훈·윤종오 국회의원은 에쓰오일 크레인사고와 관련해 공동논평을 내고 “기업살인처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업살인법안은 산업안전보건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말하는 것으로 기업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번 사고는 알 감디 사장에게 있어 취임 후 최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완공시점이 늦춰질 경우, 석유화학 투자를 통해 수익창출이라는 계획에 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안전관리부실 등에 대한 책임 소재도 향후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매년 불거지는 국부유출 논란도 알 감디 사장이 짊어져야 할 과제다.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사 중 배당성향이 가장 높은 기업이다. 아람코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만큼 매년 국부 유출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 지분 63.4%를 보유하고 있다. 배당이 높을수록 아람코에게 돌아가는 금액도 많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에쓰오일은 중간배당을 포함해 7219억원을 주주에게 돌려줬다. 배당성향은 59.9%였다. 에쓰오일은 34년만에 첫 영업손실을 봤던 2014년을 제외하고는 2004년 이후 40% 이상의 배당성향을 유지했다. 특히 2007년과 2008년에는 배당성향이 각각 173.8%, 130.5%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폭발사고를 알 감디 사장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취임 후 처음 맞는 위기인 만큼, 현명한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알 감디 사장의 대처에 따라, 에쓰오일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