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차세대 아이폰에 삼성디스플레이 OLED 탑재… 소니, TV신제품에 LG디스플레이 패널 써
‘적의 칼로 싸워라’. 삼성전자 출신으로 소니코리아 대표이사와 레인콤 부회장을 지낸 이명우 박사가 2013년 출간한 책 제목이다. 기존 시장과 경쟁사 상품·서비스, 전략·전술 등을 재해석해 기업경영에 활용하라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에서 새로움이란 ‘세상에 있던 것을 새롭게 활용하는 것’이라 말한다. 최근 이 같은 ‘경영격언’의 대표적 현장이 바로 정보기술(IT)업계다. 그 한복판에 글로벌 강자 애플과 소니가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 갤럭시를 뒤따라 차세대 아이폰에 OLED를 탑재한다. 공급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받기로 했다. 애플은 TV사업을 위해 아마존과도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가전업계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소니는 7년 만에 OLED TV를 재생산하면서 패널을 LG디스플레이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적의 칼’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국내 업계도 특수를 누리는 모양새가 됐다.
11일 IT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에 신공장 착공을 위한 부지 조성작업에 착수했다.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설비 증설에 나서기 위해서다. 애플이 아이폰에 OLED를 탑재하기로 하면서 관련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 OLED를 탑재해왔다. 삼성전자와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애플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자연스레 액정표시장치(LCD)에 대한 수요가 OLED로 바뀌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과 삼성이 트렌드 세터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세가 바뀔 가능성도 농후하다.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빅3(화웨이, 오포, 비보)도 OLED에 대한 수요를 늘릴 가능성이 커졌다.
애플로서는 스마트폰 라이벌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적인 ‘칼’(OLED)을 통해 시장에서 싸우게 됐다. 애플의 이 같은 선택을 한 배경에도 역시 ‘적’이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7 엣지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휘는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서다. 시장 안팎에서는 애플이 아이패드에도 마찬가지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애플이 쓰는 ‘적의 칼’이 여기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애플이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아마존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어서다. IT전문매체 리코드는 5일(현지시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가입자가 올 여름부터 애플TV 셋톱박스에서도 손쉽게 영화, 쇼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리코드는 이를 두고 “IT계 두 거물의 휴전”이라 표현했다. 그간 애플 기기에서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장 보기에 아마존 서비스의 확장 같지만 애플 입장에서 얻는 게 많다는 해석도 있다. ‘높은 성의 사나이’ 등 아마존 프라임이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가 ‘킬러콘텐츠’로 인기를 크게 끌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앞서 삼성전자도 아마존과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 미디어 비평가는 “아마존 프라임의 질적 성장이 매우 눈에 띈다. 넷플릭스 대항마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도 요긴한 유인책 노릇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 입장에서는 애플TV가 다소 부진한 상황이어서 하나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앞서 애플은 지난 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애플TV, 애플워치, 비츠 라인업, 아이팟 등 기타 애플 제품 등을 포함한 부문 매출이 직전분기보다 29% 하락했다고 밝혔었다.
일본 전자기업 소니도 ‘적의 칼’을 쓰려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가 다음달 10일 OLED TV 신제품을 내놓기로 했다고 9일 보도했다. 신제품은 800만개 픽셀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X1 익스트림 프로세서’가 적용됐다. 소니가 OLED TV를 내놓은 건 2010년 판매 중지 이후 7년 만이다. 특히 소니는 OLED TV를 재생산하면서 LG디스플레이로부터 패널을 공급받기로 했다.
잘 알려졌듯 소니와 LG전자는 전통의 가전 라이벌이다. 여기에 삼성전자까지 끼면 치열한 삼국지가 구축된다. 당장 소니가 만드는 OLED TV는 글로벌 시장서 LG전자의 OLED TV와 맞대결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소니는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LGD의 ‘칼’(OLED)를 써야 한다고 계산했다. 전통의 TV강자 소니가 뛰어들면서 OLED 시장 구도가 출렁일지 여부가 관심을 모으게 됐다.
LG로서도 손해볼 게 없다. LGD가 기술력에서 가장 앞선 OLED TV 시장이 커지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디스플레이의) 올해 OLED TV 패널 출하는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배 증가한 155만대로 예상한다. 내년 하반기에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LG전자, 소니, 중국 로컬 TV 업체로 두께 3.8mm Wall paper OLED, CSO (Crystal Sound OLED) 등 하이엔드 OLED TV 패널 출하가 크게 증가하리라 전망한다”고 풀이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적의 칼’로 춤을 추는 덕에 국내 부품업계도 새 기회를 얻게 됐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중소형 OLED 최강자는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를 처음 대량생산한 기업이기도 하다. LG디스플레이는 TV에 쓰이는 대형 OLED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두 업체 모두 각각의 시장에서 점유율 95%를 넘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수출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510억800만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OLED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늘었다. 이 기간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은 약 40만개가 늘었고 TV용 OLED 출하량도 2만개가 증가했다. 앞서 3월 OLED 수출액도 역대 최대치로 나타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