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1만5578가구 이주…강남發 전세대란 우려
“재건축 절차가 진행될수록 전·월세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요새는 몇개월 살지도 못하는 철거 임박한 재건축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도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섭니다. 인근의 이주 완료한 공무원8단지와 6월말까지 이주를 마쳐야 하는 공무원9단지 세입자들이 자녀 학교 문제로 멀리 이사를 못가니 몇 개월이라도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이곳으로 수요가 몰린 영향인 듯 합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
강남 임대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겨울 내내 매매시장과 함께 얼어붙어 있는 듯 하더니, 재건축 철거로 인한 이주시기가 도래하면서 세입자들의 이동이 잦아지고 전월세 가격까지 상승하는 것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는 관리처분인가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합은 7월부터 12월까지 세입자들의 이주가 이뤄지고 내년 1월부터 철거를 시작하는 일정이다.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이곳에 살다 임대차계약 기한이 완료된 세입자들은 다른 집을 구해 이사했고 서서히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식이 오래돼 살기 불편한데다 재건축을 앞두고 이주를 위한 각종 거주민실태 조사, 이주를 촉구하는 현수막 등이 걸리며 뒤숭숭한 분위기가 형성돼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이 일대는 이같은 분위기가 사라지고 전·월세집을 구하기 위한 임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선 재건축 절차가 더 진행됐는데도 말이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인근에 위치한 공무원8단지와 공무원9단지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8단지는 이미 이주를 완료했고 9단지는 오는 6월 말까지 이주를 마쳐야 하는데 자녀가 있는 가구의 경우 학교 때문에 멀리 이사를 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길어야 6개월여 밖에 살지 못하는 철거 임박한 이 아파트만 해도 지난해 하반기엔 전용면적 50㎡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에 월 30만원 수준의 매물이 쌓여있었지만 최근엔 월세가 최소 10만~15만원 가량 상승한데다가 수요가 몰리며 매물을 구하기 쉽지 않아졌다. 전세보증금도 1000만원 가량 올랐다. 하반기에 개포4단지(2840세대)까지 서울시의 이주 명령이 떨어지면 전세난 심화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이 단지의 국지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3% 상승하며 올들어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1~2월 보합세를 보이다 3월 이후 상승 폭을 키워가는 모양새인데, 이같은 서울 전셋값 오름세는 서초·강남·강동구 등 이른바 강남권 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실제 지난주 서초구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0.08%를 기록했다. 서초구 전셋값은 최근 한 달간 0.29% 상승했다. 한 달 기준으로도 서울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지난달 서초 우성1차 아파트(786가구) 이주가 사실상 마무리된 데 이어 다음달에는 무지개 아파트(1074가구) 이주가 시작된 영향이다.
업계에서 가장 큰 위기로 판단하는 곳은 강동구다. 국내 최대규모의 아파트인 둔촌주공 이주시기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1~4단지(5930가구)와 바로 옆 상일동 고덕주공6단지(1370가구)는 이르면 오는 6월 이주에 돌입한다. 총 7500세대에 달한다. 대규모 이주를 앞둔 영향인지 강동구 전셋값은 지난해 12월 첫주부터 이달 첫주까지 18주 연속 하락하다 이달 둘째주 들어 상승세로 전환했고, 전셋값은 전주 보다 0.02% 올랐다.
전문가들은 강남발 전세는 인근 동네에서 신도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아파트 뿐만 아니라 다세대주택, 빌라 등의 시세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강동에서 이주수요가 나타나면 일단 1차적으로 암사, 명일동, 천호동, 길동, 성내동 등 강동구 내 인근지역의 전셋값이 먼저 오른다"며 "다음으로 위례 등 인근 신도시로 번지는데, 위례의 경우 올해 입주물량(4000여가구)이 많지 않은 편이라 전세난이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