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 일선 경영 맡고 오너일가 지주회사로…"지금까진 성공적"
전문경영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오너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오너들이 지주회사로 옮겨 회사 경영상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추천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총수일가가 뒤로 빠지고 전문지식과 경영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들이 발군의 역량을 펼치면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증인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한 전문경영인들이 각 사업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세탁기 장인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LG전자 호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인수·합병(M&A) 전문가 박정호 사장이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박성욱 사장이 삼성전자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전문경영인 전성시대지만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오너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전문경영인들은 단기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큰 반면 오너는 회사 미래를 위한 대규모 투자나 채용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총수 구속을 경험한 기업 관계자는 “회장이 없어도 각 사업은 문제 없이 돌아갔지만 대규모 투자는 결정할 수 없었다”며 “책임 문제 등 여러 사유로 대규모 투자는 오너가 아니면 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회사마다 그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색깔이 있는데 이것이 곧 정체성”이라며 “오너만이 이를 지켜갈 수 있게 조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오너 일가는 그동안 창업주 세대와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박주근 대표는 “재벌 2~3세는 창업주와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세한 경영에 간섭하기 보단 오너 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해야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LG는 이 같은 방식을 행하고 있다. 2015년 연말 인사를 통해 구본준 부회장은 지주회사 LG로 자리를 옮겨 신사업 발굴 역할에 집중하고 있고 이후 조성진 부회장이 LG전자의 실질적 최고경영자로 성장해왔다. 일단 올해 1분기 실적을 놓고 보면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SK그룹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분담이 가장 잘 돼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SK는 지난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2012년에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출범하며 전문 경영인 중심의 독립 책임 경영 체제를 수립했다. SK관계자는 “각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독립적으로 담당하고 최태원 회장은 그룹 및 각 관계사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적 대주주로서 큰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SK계열사 고위관계자는 “회장이 뒷받침하고 지원했기 때문에서 어려운 시장상황에도 대규모 투자를 늘려나갈 수 있었다”이라고 말했다. 대표 사례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업황이 안 좋은 상황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려나가는 전략으로 위기를 빨리 탈출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은 짧은 기간 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전문경영인 결단만으론 불가능 하다.
삼성전자도 지주회사와 사업 사를 나누는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하려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복귀한다면 지주회사 쪽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 인수처럼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에만 집중할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