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건전성 개선·가계 부채도 고소득자 중심…취약계층 신용위험 확대는 부담"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은 대체로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시장 금리가 상승세로 전환한 가운데 가계신용 급증세, 취약 업종의 잠재 위험 상존 등으로 금융 리스크는 다소 증대된 것으로 본다.”
허진호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23일 열린 금융안정회의 설명회에서 국내 신용 시장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번 금융안정회의를 통해 취약차주(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했다”면서도 “가계부문의 차주 분포라든지 금융 기관 복원력 종합적으로 감안했을 때 당장 위기상황으로 갈 정도로 위험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23일 금융통화위원회 금융안정회의를 열고 국내 금융의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했다. 한국은행은 올해부터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연 12번에서 8번으로 줄이는 대신 나머지 4번(3·6·9·12월)은 금융안정 상황을 논의하고 점검키로 했다. 이번 금융안정회의는 금통위 운영 방법을 바꾼 이후 처음 열린 회의다.
◇ 가계신용, 취약 차주 부채 위험성 커져···종합적인 안정성은 ‘파란불’
한국은행은 국내 신용 시장에 어느정도 위험성이 잠재돼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급증하고 있는 가계 신용에 우려를 표했다. 신호순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은 “신용시장에서 가계신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취약 계층 부채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출 금리 상승에 따라 취약 계층 채무 부담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24일 배포한 ‘2017년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가계부채는 1344조3000억원으로 전년말과 비교해 11.7% 증가했다. 이는 예년(2010~2014년) 평균 증가율인 6.9%를 훌쩍 뛰어넘는 것은 물론 이례적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했던 2015년 증가율 10.9% 수준을 상회한다. 특히 지난해말 비은행 가계대출 증가율이 전년대비 13.8% 늘면서 가계 신용 급증을 견인했다.
문제는 취약 계층 부채 규모도 확대됐다는 점이다. 취약 차주 대출 규모 추정치는 지난해말 78조6000억원으로 2015년 73조5000억원에서 5조1000억원 늘었다.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고위험가구 부채 규모도 2015년 46조4000억원에서 지난해말 62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전체 가계 부채에서 차지하는 고위험가구 부채 비중도 2015년 5.7%에서 지난해 7%로 증가했다. 이들의 경우 시중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상환 부담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국은행은 종합적으로 가계 신용을 판단했을 땐 안정적인 상황이라 평가했다. 가계부채 분포가 고소득·고신용층 위주이고 차주의 채무상환 능력이 개선된 까닭이다. 지난해 총가계부채에서 고소득(상위 30%) 및 고신용(신용등급 1~3등급) 차주 비중은 각각 65%, 65.7%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말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은 34.2%로 전년과 비교해 3.5%포인트 상승했다.
◇ 기업 신용 둔화에 재무 건전성 ‘개선’···“금리 인상시 업종별 대응력은 달라”
한국은행은 지난해말 기업 신용은 증가세가 둔화로 재무 건전성이 개선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는 업황 부진에 따른 투자 위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지닌다. 한국은행은 대출 금리가 상승하게 될 경우 일부 업종과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말 예금은행의 기업 대출은 760조2000억원으로 지난해말 대비 4.1% 증가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전년대비 대출 증가율이 2015년 10.5%에서 지난해말 5.7%로 크게 둔화됐고 대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0.6%에서 -1.2%로 대출 감소폭이 확대됐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에서도 비우량물(A등급 이하)와 우량물(AA등급 이상) 모두 순상환 기조가 지속됐다.
이로 인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말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73.4%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2%포인트 하락했다. 부채비율 200% 이상 기업 비중도 11.9%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포인트 줄었다.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도 상승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기업이 수입에서 얼마를 이자비용으로 쓰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을 경우 영업이익으로도 이자비용을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지난해 1~3분기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5.8배로 전년 같은 기간 4.9배보다 상승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취약 업종 중심으로 여전히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자보상배율 상승폭은 영업이익 규모 상위 5% 이외의 기업에서 크게 나타났다. 더불어 기업 단기 부채상환능력을 나타내는 당좌비율, 현금성 자산비율도 전반적으로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며 “다만 조선과 해운업 등 업종의 부채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어 대출 금리 상승시 채무상환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 ‘금리상승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 변화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가 150bp(1bp=0.01%) 상승시 이자보상배율 1미만 기업 비중이 철강과 조선업이 각각 2.7~8.6%포인트, 3.6~8.9%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중소기업(1.7~5%포인트)이 대기업(1~2.8%포인트)보다 이자보상배율 1미만 기업이 더 많아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