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 BH빔, 판로 다각화로 공급과잉 극복
후판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공급과잉 품목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정부 주문처럼 후판 설비를 줄이기보다 판로를 다각화하고 있다.
후판은 두께 6㎜이상 두꺼운 철판이다. 후판은 슬래브(Slab)를 롤러로 길고 얇게 펴 만든다. 슬래브는 용광로(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굳혀 만든 철강 기초 자재다. 후판 대부분은 선박 외장재로 쓰인다. 해상 유전인 오프쇼어 플랜트(Offshore Plant)나 빌딩 외벽으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후판 경기는 악화됐다.
국내 철강 3사인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은 후판 생산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는 4곳, 현대제철은 두 곳, 동국제강은 1곳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능력은 포스코가 연생산능력 779만톤으로 가장 많고 현대제철이 350만톤, 동국제강이 150만톤으로 뒤를 잇는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를 인용해 국내 철강사 생산 능력이 과잉됐다고 지적했다. 조선·건설 등 전방 수요산업이 불황인데 설비를 많이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단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들 철강 3사는 설비를 감축하는 게 정답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은 주문 제작이라 설비가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업황이 좋아지면 그때 다시 설비를 늘리라고 할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포스코는 후판 설비를 줄이지 않았다. 대신 건축자재인 Built-up H빔(BH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BH빔은 초대형 건축물용 H빔으로 후판을 원료로 쓴다. 건축설계에 맞춰 주문 제작이 가능한 고부가 제품이기도 하다. 전기로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H형강과는 다르다. 포스코는 여기에 솔루션 마케팅을 더했다. 포스코 솔루션 마케팅은 철강 구매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사가 철강재를 가공하거나 사용할 때 컨설팅까지 제공한다.
현대제철도 후판 설비를 줄이진 않았다. 대신 후판 성능을 향상시켰다. 현대제철은 자사가 생산하는 후판 강재로 지난 2월 한국선급인증을 취득했다. 현재 컨테이너선이 점점 커지면서 선박에 쓰이는 외장재 두께도 두꺼워지고 있다. 균열이 생기면 외장재 무게 탓에 균열이 계속 커지는 안전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현대제철이 인증을 취득한 EH7 후판은 최대 두께 100㎜로 기존 후판보다 강도가 높다. 현대제철은 내진용 BH빔도 개발하는 등 후판 용도를 다각화 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유일하게 후판 설비를 축소했다. 후판 생산라인을 3곳에서 1곳으로 줄였다. 이어 조선용 후판을 줄이고 해상 유전, BH빔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BH빔은 그동안 쌓인 노하우로 업계에서 최고로 통한다”며 “자동차용 강판에도 후판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수출까지 보면 후판이 공급과잉이 아니라는 게 업계 시각”이라며 “조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후판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면서 공급과잉 오명을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