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어 브라질 닭고기 후폭풍에 영세 자영업자들 '눈물'…휴·폐업 고려도 늘어
“수많은 중장년 은퇴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자영업에 내몰리게만 놔둘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가 치킨공화국도 아니고…”
헌법재판소 판결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2일 ‘2016년 재정전략회의’에서 꺼낸 말이다. 은퇴 후 치킨 창업 말고는 별달리 길이 없는 경제상황을 빗댄 말이다. 닭과 관련한 연이은 악재에 이들 ‘치킨공화국의 자영업자’들도 고민이 많다. AI(조류 인플루엔자)에서 시작된 거센 바람은 이제 브라질에서 일으킨 날개짓에 더 커진 모양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전국 치킨 전문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치킨 전문점의 86%가 AI로 인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출 감소율은 29.7%였다. 조사는 전국 치킨 전문점 207개(프랜차이즈 154개소, 非프랜차이즈 53개소)를 대상으로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눈길 끄는 대목은 규모에 따른 차이다. 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영세한 비(非)프랜차이즈 치킨집의 92.5%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프랜차이즈 매장(83.8%) 응답률을 10%포인트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치킨전문점들은 AI가 발생한 11월과 비교해 올해 1~2월 생닭 평균 구입 가격이 12.6% 상승했다고 답했다. 장수청 외식산업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가격인상 움직임의 단초를 제공한 생닭 가격 안정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근본적인 해결책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생닭 가격이 안정되지 못하면 업계 일각에서는 수입산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단가 차이 때문이다. 이 와중에 브라질 닭고기 스캔들이 터졌다. 수입 생닭 대부분은 브라질과 태국에서 온다. 앞선 전국 치킨전문점 조사는 17일, 18일 이틀 간 진행됐다. 조사 직후 또 돌발악재가 터져버린 셈이다.
식자재 관련 기업의 한 관계자는 “메이저 치킨프랜차이즈는 하림 같은 대기업과 계약해 국산 생닭을 주로 사용하고, 그게 경쟁력 측면에서도 좋다”면서도 “문제가 된 브라질산 등은 주로 닭강정, 닭꼬치 등에 쓰이거나 마이너한 브랜드 혹은 일부 시장 치킨 등에 쓰인다. 브라질산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면 당장 피해를 보는 건 영세 자영업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브랜드도 이 국면을 쉽게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22일 맘스터치는 순살조청치킨, 케이준강정, 강정콤보 등 총 3종에 대해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맘스터치 측은 “정식 수입통관 절차를 거쳐 유통된 안전한 원료육으로 생산된 제품”이라면서도 “브라질산 닭고기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 우려를 고려하여 판매를 중단한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결국 치열한 단가 경쟁 탓에 브라질산이 태국산으로 바뀌는 수준의 변화 밖에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작 책임져야 할 건 검역당국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앞선 식자재관련 기업 관계자는 “문제가 된 닭이 국내에 들어왔다면 검역 관리를 제대로 못한 당국의 책임이 더 큰 것이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자료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다면 그것도 그 자체로 잘못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식품의약약전처는 20일에 브라질산 닭고기에 대한 유통·판매를 중단시켰다가 21일에 이를 바로 해제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BRF가 현지에서 문제가 된 건 맞지만 국내 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국내로 닭고기를 수출하는 BRF 5개 육가공장에서는 부패 닭고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국내 한 대형 식품업체 관계자는 “식품과 관련한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는 식약처의 갈팡질팡 발표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이미 식품업계에서는 불신하는 분위기가 넓게 퍼져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앞선 조사결과와 관련해 “치킨 전문점의 매출액 대비 식재료비 비중이 거의 절반인 약 47%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영업이익 비중은 16% 정도”라며 “가격을 올려 일정 수준의 영업이익이 확보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휴·폐업 또는 업종전환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非프랜차이즈 매장의 경우 무려 41.5%가 휴·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