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기술력 이탈 방지 차원 접근할 듯…도시바, SK에 입찰 문서 전달
도시바가 메모리반도체 부문 매각을 공식화면서 인수전에 뛰어든 SK하이닉스 향후 전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더라도 경영이나 연구개발(R&A)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근까지 도시바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최후까지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업계에선 “가격을 올리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 도시바가 SK하이닉스 측에 10조원에 지분 50%를 매각하는 입찰 문서를 전달한 사실이 지난 6일 SK하이닉스 공시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런 분석이 현실화한 셈이다.
도시바는 낸드(NAND)플레시 메모리를 최초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기업으로 일본 반도체 업계의 자존심이다. 낸드플레시는 적층형(3D) 낸드까지 발전하면서 현재까지 비휘발성 플레시 메모리 업계에서 핵심을 이루는 기술이다. 인텔이 지난 2015년 3D 크로스포인트(Xpoint) 플레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수전에 뛰어든 업체나 펀드 들은 도시바가 보유한 생산시설보다는 내부 기술력, 연구 인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내부 인력이 이탈할 경우 인수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이들이 인수 법인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도록 연구개발에 대한 독립성을 유지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이미 SK뿐만 아니라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인수 법인에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다가 M&A(인수합병)에 사실상 실패한 사례가 많다”며 “도시바를 인수하더라도 내부 인력 유출이 되지 않도록 연구 개발 등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M&A 전략은 삼성의 하만 인수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에 대한 지분매각을 결정한 하만 인더스트리도 계열사와 합병되지 않고 삼성전자 자회사로 운영된다. 하만 인더스트리는 전장 솔루션과 음향에 특화한 회사로,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부터 음향 서비스 등 오락까지 제공하는 ‘차량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에선 전 세계적으로 3만여명이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인수 대상 기업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의 전략은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진행해왔던 해외 인수 합병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마련된 것이다. SK그룹은 2000년대 이후 국내 인수합병과 달리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한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SK그룹은 국내 기업 중 2006년에는 인천정유를, 2007년에는 현재 SK브로드밴드인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기존 사업 점유율을 높이는 등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2009년 인수 당시 유망한 앱(App)으로 꼽혔던 숍킥이나 미국 이동통신회사 라이트 스퀘어는 수년간 적자에 시달렸다. 특히 업계에선 인수 후 내부 인력 유출을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IT분야는 거래망, 가입자보다 내부 인력이 보유한 노하우, 기술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력 유출이 기업 경쟁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쉽다. 국내와 달리 해외 인력들은 경력 이직이 자연스러운 일인데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메모리반도체 호황으로 관련 연구원들 몸값도 비싸졌다.
인수과정 자체에선 연구개발 해외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일본 업계나 정부의 반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의회에서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 시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일본 업계와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인수협상에 접근하고 있다. 한 전자 업계 전문가는 “일본 입장에선 도시바 일부를 파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겠지만 어차피 팔 거라면 중국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인수하는 것보다 (내부 인력 유출 우려가 낮은) SK하이닉스가 사가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