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2월에 다시 증가폭 확대…제 2금융권·취약계층 대출 늘어
둔화하던 가계부채가 2월들어 다시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 제 2금융권 대출이 늘면서 가계부채 질도 나빠졌다. 시장 금리도 상승하고 있어 다중채무자와 한계가구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계 부채 총량을 줄이고 질을 높일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 가계 부채 증가폭 다시 늘어···제 2금융권 부채도 증가
주춤했던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하는 모양새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2월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10조9000억원(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으로 한 달 사이 2조9000억원 늘었다. 이는 올해 1월 주택거래 감소와 금융권의 대출규제 영향으로 585억원 증가하는데 그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가계부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증가액은 2010∼2014년 2월 평균(9000억원) 3배가 넘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기 시작한 2015∼2016년 2월 평균(3조3000억원)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2월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535조9000억원으로 전월과 비교해 2조1000억원 늘었다. 예·적금담보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 등 기타 대출 잔액도 174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8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이 많이 취급되면서 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또 설 연휴에 쓰인 신용카드 결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타 대출 잔액도 1월에 비해 2월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예금은행에 막힌 대출자가 비은행예금취금기관 문을 두드리는 ‘풍선효과’도 뚜렷했다. 이날 한국은행은 ‘1월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도 발표했는데 예금은행 잔액은 2조888억원 줄어든 반면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신탁·우체국예금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2조9412억원 증가했다.
특히 1월 상호저축은행 가계대출은 19조2620억원으로 전월(18조2850억원) 대비 9770억원(5.3%) 늘었다. 올해 새롭게 반영한 ‘영리목적의 가계대출’ 증가액 4692억원이 추가된 영향이 컸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총량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3년 10월 이후 가장 컸다.
◇ 정부 정책 효과 ‘글쎄’···취약계층 우려 더욱 커져
풍선 효과가 현실화하자 정부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등 가계 부채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2월 은행권을 시작으로 같은 해 7월 보험권으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확대했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부동산 관련 집단대출을 금지하면서 여신 심사를 강화했다. 하지만 대출 증가폭이 줄지 않은 가운데 여신 심사가 까다로운 은행권을 피해 대출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 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부작용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다중채무자와 한계가구도 늘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에 제출한 '나이스평가정보 2012∼2016년 다중채무자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기관 5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고위험 다중채무자는 101만7936명으로 2012년 말(96만9869명)보다 5% 증가했다. 국내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자 역시 38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제대로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도 2012년 4.5%에서 지난해 9%로 급증한 상황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다른나라에 비해 한국 가계 대출이 심각한 점은 상환하기보다 차환하는 구조가 많다는 점이다. 또 분할 상환하기보다는 일시에 상환하려고 한다거나 만기되면 다시 연장하는 식의 형태가 많다”며 “이렇다보니 일을 할수록 가계부채가 조금씩 줄어들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도 부채 규모가 유지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은퇴 이후 부채가 상환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대출 구조를 바꾸는 분할 상환 제도 등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오는 13일부터 자산 1000억원 이상 조합 및 금고를 대상으로 맞춤형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키로 했다. 오는 6월 1일부터는 전체 조합 등으로 확대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