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돌풍 일으키며 한국서도 논의 착수…고용·출산·휴식 '일석삼조'
◇"최소휴식시간 보장제, 현실성 있다" 호평
근로시간 단축은 국민의 여가 보장과 추가 고용창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여야는 주당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관련 법안을 놓고 지난 2012년 5월 첫 발의 이후 5년 가까이 힘겨루기만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루기 어려운 구호성 공약보다는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실질 근무시간을 줄이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소휴식시간 보장제는 현실성을 갖춰 실현가능성이 높은 법안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진보진영에서 제기되는 주35시간제나 주4일제 도입은 일부 노동자에게만 도입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고령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주4일제 도입이나 잔업 금지, 연차휴가 수당 전환 금지, 최소휴식제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저성장도 문제지만 성장을 해도 그만큼 일자리 창출을 못하는 게 더 문제다. 올해 한국경제의 고용창출능력은 2012년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성장률 1% 당 취업자 증가 규모가 올해 10만 명으로 2012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로 2.6%를 제시했지만, 일자리 증가 규모는 같은 성장률을 기록한 작년의 29만 명에서 3만 명 줄어든 26만 명 내외로 내다봤다.
전통적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지금까지 노동시장 정책은 정부가 노동시장의 미스 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실직자에겐 직업훈련과 재교육, 구직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통해 실직자들을 보호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고용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일자리 자체가 사라져가고 재교육을 받더라도 구직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고용없는 성장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이에 해외에선 일자리 나누기를 실험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 정책 중에서도 최소휴식시간 보장제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대형슈퍼 체인인 '이나게야'는 올해 1만명의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퇴근 후 다시 출근할 때까지 10~12시간의 간격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최소휴식시간 보장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에 해당 제도를 도입했다. 유럽연합 근로시간지침(2003년) 제3조(매일의 휴식)는 “회원국은 모든 근로자에게 24시간 당 최저 11시간의 계속된 휴식시간이 매일 부여되는 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급여 깎여 '투잡' 불가피 vs. 임금감액분 노사정 공동부담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임금보전 문제가 쟁점이다. 일각에선 임금을 깎고 일자리 나누기를 한다면 저임금 근로자들이 깎인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위 투잡족이 대거 양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은 “초과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총액 저하는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주40시간 근무제로 정상 근로시간 단축은 생활수준(임금총액)의 저하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원칙을 제시했다.
노동자들만 전적으로 임금감액을 부담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김유선 연구원은 “노사정 3자 분담을 원칙으로 하되,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생산성 향상 등을 연계해 임금총액 저하를 최소화하고,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