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시장별 경쟁체제로 경쟁력 제고" 주장…독립성 보장할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국거래소가 지주사 전환 문제로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사측은 한국거래소가 수수료 의존적 수익 구조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지주사 전환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노조 측은 지주사 전환은 되레 경쟁력 약화와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같은 갈등 심화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본질적이고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밀어부치는 사측과 반발하는 노조
지주사 전환 문제로 한국거래소 노사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사측은 사실상 지주사 전환을 위한 실무작업에 들어갔고 노조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9월부터 증권시장에 거래증거금을 도입하는 등 청산결제제도 개선을 시작했다. 관련 업계는 이같은 한국거래소 움직임을 지주사 전환 요건 중 하나인 중앙청산소(CCP) 분리를 위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앞선 24일 ‘거래소 지주회사전환법’ 통과시 파업까지 불사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지주사 전환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내비친 상황이다. 거래소 지주회사전환법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불발됐지만 노조는 나아가 법안 폐지까지 주장하면서 지주사 전환 반대 주장을 공고히 한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둘러싼 갈등은 2015년 7월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가 금융개혁회의 결과로 내놓은 ‘거래소시장 경쟁력 강화방안’ 이후부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는 코스피, 코스닥, 파생시장 등 시장을 나눠 경쟁체계를 확립해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지주사 전환과 한국거래소 상장이라는 구체적인 안을 내놨고 노조가 이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위한 관련법은 2015년 9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정무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최경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속적으로 밀어부쳤고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바톤을 이어받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지난해 국정조사에서 밝히면서 다시 쟁점화 됐다.
◇ “지주사 전환은 경쟁력 제고 수단”···“오히려 비효율적”
노조는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이 비효율적이라 비판한다. 노조 측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시장을 자회사로 분할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지주회사 체제에서 공정거래 규제와 조세 부담이 늘어나고 거래소와 증권사의 시스템, 인력 분산에 따른 비용도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모든 비효율은 시장참가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주사 전환 의도도 경쟁력 강화와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이동기 한국거래소 노조위원장은 “이 법안은 자본시장 활성화와 거래소 경쟁력 강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자본시장 관치를 늘려 비효율만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며 “낙하산 인사 문제가 번번이 불거져 나오는 게 현실인데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낙하산 자리를 오히려 더 많이 만드는 꼴이 된다. 더불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지배갈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사측은 거래소 지주사 전환이 필수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취임식에서 “최근 거래량이 정체된 상황에서 거래수수료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세계 유수 거래소처럼 중앙청산소, IT, 지수개발 사업 등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코스피, 코스닥, 파생 등 개별 시장뿐 아니라 청산 등 후선기능까지 별도의 자회사로 독립시켜 기존에 비용 요인으로 치부되던 기능들을 최대한 수익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 입장을 지지하는 한 업계 관계자도 “거래소 경쟁력이 강화돼야하는데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통한 경쟁 시스템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해외 경쟁력 있는 거래소 대다수가 관리자 역할에서 벗어나 지수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는 등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금융 시스템 전체를 봐야”···”거래소 갈등 오히려 투자자에 손해”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종합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주사 전환에는 장단점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일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지주사 문제 하나에만 몰두해선 안된다. 한국거래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예컨데 독립성을 보장하는 시스템 구축 등이 더 필요한 문제일 수 있어 이와 관련해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 내 갈등 심화가 오히려 투자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한국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 유입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 자본시장 매력도가 높아야 하지만 이에 더해 한국거래소도 경쟁력이 높아야 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좋은 기업이 상장되고 좋은 거래 시장을 만드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최근 한국거래소 내 갈등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든 경쟁력 강화가 늦어지면 손해를 보게 되는 건 투자자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