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상위영화 집중도 크게 높아져…영화계 “영화의 다양성·산업기반강화 역행”
스크린 독과점은 묵고 묵은 논란이다. 업계와 현장,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까지 모두 이 논란 위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의견은 평행선을 달린다. 극장업계는 아예 ‘스크린 쏠림’이라는 프레임을 생산해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 극장이 의도적으로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특정 영화로 쏠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분석 결과는 업계발(發) 프레임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4년간 상위영화 상영배정 집중도를 살펴본 결과 상영횟수 1위 영화로 몰리는 집중률이 더 심화돼서다. 영진위는 “소위 ‘스크린 독과점’ 상황이 2016년 크게 심화됐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일각의 반발을 예상한 탓인지 ‘소위’라는 표현을 덧붙였지만 스크린 독과점이 현실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이 같은 분석은 지난해 야권의 두 의원이 동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국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상영횟수 1위 영화 집중률 해가 갈수록 심화
최근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 2016년 영화산업결산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 끄는 항목은 ‘시장집중도’ 분석이다. 이 중 극장업계와 투자배급업계 집중도 양상은 지난 1회에서 다뤘다.(관련기사: [영진위 산업결산 맥 짚기]① “극장산업 독과점 극심”) 할리우드 투자배급사가 본격 상륙한 투자배급업계에 비해 극장업계의 시장왜곡이 짙게 나타났다.
왜곡이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흥행 1위 영화에 대한 상영배정 집중도는 크게 심화됐다. 동시기 개봉영화 중 한 작품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경향이 커졌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영진위는 흥행 상위영화에 배정된 상영기회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하루 단위로 상영횟수 1위부터 3위 영화를 뽑았다. 각 작품의 하루 단위 상영횟수와 배정 좌석 수, 입장권매출액을 뽑아보기 위해서다. 영진위는 이 수치를 다시 연단위로 합산해 4년간의 변화양상을 추적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상영횟수 1위 영화에 배정된 상영회차는 전체의 31.6%를 차지했다. 2013년 28.1%보다 3.5%가 늘어난 수치다. 즉 주요 극장업체들이 시기마다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영화에 배정한 상영회차가 연간 3분의 1 가깝다는 얘기다.
지난해 유일한 1000만 영화인 부산행은 총 15만 1315번의 상영회차를 얻었다. 1주일 후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의 상영회차는 9만 7019회다. 지난해 국내서 개봉한 영화편수는 1520편(한국영화 302편, 외국영화 1218편)에 달한다. 2015년(1176편)보다 344편이나 늘었다. 다만 이에 대해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부가판권 시장을 노린 영화들이 극장개봉작이라 홍보해야 단가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영진위 측은 지난해 302편의 한국영화 중 디지털 시장 등 부가판권을 노려 형식적으로 개봉한 영화를 123편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지난해 극장서 정면경쟁을 펼친 한국영화는 221편인 셈이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상영횟수 1위 영화로 쏠린 매출액 집중률은 상영 집중률보다 훨씬 컸다. 흥행 1위 영화 매출액은 전체의 45.3%를 차지했다. 즉 1000편 넘는 상영작 중 시기마다 상영횟수 1위에 오른 일부 영화들이 한해 전체 영화 매출액의 45.3%를 쓸어 담은 모양새다.
하지만 이 역시 평균의 함정을 내포한다. 설 연휴기간이던 지난해 2월 9일 박스오피스 1위는 ‘검사외전’이다. 개봉 7일차였다. 이날 하루 검사외전은 118만 관객을 동원해 하루 상영 영화 중 매출액 점유율 71%를 나타냈다. 검사외전의 상영회차는 15만 3532회로 지난해 상영작 중 1위였다. 검사외전은 부산행과 함께 지난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가장 뜨거웠던 영화다.
검사외전의 상영횟수(9451회)는 2위 쿵푸팬더(3963회)와 3위 앨빈과 슈퍼밴드(800회)보다 각각 2.4배, 11.8배 높았다. 대형 블록버스터나 텐트폴(배급사의 주력작) 영화가 없는 시기에 1위 영화 집중률이 떨어지는 걸 감안하면 성수기 집중률은 한해 평균을 크게 웃돌 수밖에 없다.
다시 영진위 분석으로 돌아가 보자. 회차 배정률에 비해 매출액 집중률은 15% 가까이 높다. 이는 두 가지 정도 이유가 복합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1위 영화가 상대적으로 관객방문이 편한 시간대에 상영을 배정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 말 그대로 관객선호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가 갈수록 1위 영화를 둘러싼 시장집중도가 높아지는 점도 눈길을 잡아끈다. 지난해 상영횟수 1위 영화의 점유율은 지난 4년 중 가장 높았다. 또 이들 영화의 좌석수와 매출액은 2013년과 비교해 3.8%, 4.4%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2, 3위 영화의 비중은 되레 줄었다. 상영횟수 2위 영화 점유율은 2013년 20.3%에서 지난해 18%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3위 영화는 13.6%에서 12.1%로 1.5%포인트 내렸다. 이 때문에 1~3위를 합산한 집중률은 4년 간 대동소이했다.
한 영화연구자는 “1970년대 이후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처음 탄생했을 때 사람들이 애초 기대한 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리어 대형영화 중심으로 패턴이 옮겨갔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고 있다. 미국처럼 스크린 수가 굉장히 독점화되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 한 영화가 하루 전국 60% 좌석 가져간 비율, 3년 만에 5배 늘어
1위 영화로 쏠린 시장집중률을 살펴보기 위해 영진위 측이 꺼낸 카드는 좌석배정 비율 분포의 4년 간 비교분석이다. 영진위는 일별 상영횟수 1위 영화에 배정된 좌석이 전체 좌석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봤다.
이를 살펴보니 1위 영화가 하루 전체 전국 스크린 좌석의 60% 이상을 가져간 날이 30일로 나타났다. 즉 30일 간은 전국 어느 극장을 가도 상영영화의 60% 이상이 특정 한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놀라운 건 4년간의 변화추세다. 2015년 같은 수치는 14일이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6일이었다. 3년 만에 5배가 늘어난 셈이다.
범위를 40% 이상으로 확장해보면 문제는 더 도드라진다. 2013년 특정 영화에 하루 40% 이상의 좌석이 배정된 날은 78일이었다. 2016년에는 131일이었다. 이에 대해 영진위 측은 “소위 ‘스크린 독과점’ 상황이 2016년 크게 심화된 것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서에 적시해 놨다.
그렇다면 주로 어떤 영화가 이런 몰아주기의 혜택을 받을까. 영진위가 보고서 초반부에서 밝힌 내용이 해답의 실마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영진위는 “2015년에 이어 중‧저예산 영화 수익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영화 제작비 주요 조달원인 투자조합들은 점점 더 중·저예산 영화 투자에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한해 각 월별 흥행작 면면을 살펴보면 특정한 경향이 오롯이 드러난다. 1월(히말라야), 2월(검사외전), 3월(귀향) 4월(캡틴아메리카), 5월(곡성), 6월(아가씨), 7월(부산행, 인천상륙작전), 8월(덕혜옹주, 터널), 9월(밀정), 10월(럭키), 11월(신비한 동물사전), 12월(마스터, 판도라). 의외의 흥행을 거둔 귀향과 럭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100억원대 작품이나 할리우드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일부러 한국영화의 성수기를 피해 4월~5월에 개봉하는 경향도 고착화된 모양새다. 2015년에는 어벤저스가 이 같은 행태를 따랐다.
이에 대해 현장의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전영문 영화 프로듀서는 22일 열린 문화산업 관련 토론회에서 “1000만 관객을 목표로 둔 영화가 엄청나게 나온다. (그런데) 한해 1000만 영화가 하나도 안 나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타격이 엄청날 거다. 그만큼 (중간 허리 부재 등) 영화산업 기반 자체가 너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전 프로듀서는 원인을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에서 찾았다. 특정 소수업체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보유한 탓에 이 구조에 맞춘 영화만 제작된다는 얘기다.
영진위 생각도 비슷하다. 영진위는 “중·저예산 영화는 수백만 명 대중 기호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다양성과 혁신의 기반이 되어왔다”며 “중·저예산 영화 제작은 시장 안에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지원정책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 업계 “투명편성” 현장 “시장 황폐화”…영비법 개정안에도 영향 미칠 듯
물론 반박의 여지는 있다. 예매율 높은 영화에 자연스레 스크린 배정을 늘린다는 논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재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영화 ‘자백’을 연출한 최승호 PD는 지난해 10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밤 사이 자백이 예매율 3위에 올랐다. 그런데 … 자백 28 럭키 131 맨인더다크 131 미스 페레그린 131 바스티유데이 122 브리짓존스의 비밀 104 아수라 117 어카운턴트 107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94. CGV는 예매율 3위 자백에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의 영화관을 배정했다. 자백보다 예매율이 낮은 영화들이 몇 배나 많은 영화관을 배정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CGV는 영화체인 선도주자다. CGV는 독과점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과학적으로 스크린을 배정하고 있다’고 항변해왔다. 여러분은 자백에 대한 스크린 배정에서 ‘과학’을 느끼는가?”라고 덧붙였다. 한때 예매율 3위이던 자백은 총 6071번의 상영회차를 얻어 14만 3648명의 최종관객 스코어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해 6월 서정 CGV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이미 한국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며 “지난해부터 CGV편성위원회를 가동해 투명한 편성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달 8일에도 “고객이 선호하는 영화에 대한 스크린 배정, 고객들의 선호가 떨어지는 영화에 대한 스크린 축소 등은 시장의 논리이자 경제논리”라고 주장했었다. 최 PD는 이 같은 인식을 정면 겨냥한 셈이다
영진위 분석이 사실상 ‘스크린 몰아주기’와 ‘스크린 쏠림’이라는 양대 프레임 중 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야당이 주도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31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시에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도 의원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영을 규제해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영문 프로듀서도 “대안은 (영비법 개정 등) 입법화다. (개정이 되면) 당장은 혼란이 있어도 장기적으로 독과점 해결이 영화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