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대부분은 사회수당…"개념 정의부터 다시해야"
로봇세가 기본소득 재원을 위한 아이디어로 제시됐다. 로봇에게 인간의 노동을 대체시키고, 로봇이 창출한 부가가치는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로봇이 상용화되기도 전에 로봇세가 거론된 탓에 현재와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자들이 이를 예상하면서도 로봇세를 제안한 이유는 기본소득 재원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국민 5000만명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더라도 연간 180조원이 든다.
한국형 기본소득은 조기대선 흐름을 타고 대선공약으로 급부상 중이다. 하지만 현재 공약으로서는 기본소득 논의에 거품이 끼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다수 기본소득 공약은 기본소득이 아닌 사실상 사회수당을 가리킨 것인데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소득보장 체계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속출하는 기본소득 대선공약
학자들이 대선주자들의 기본소득 공약에 대해 사회수당이라고 선을 그은 이유가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여부에 관련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공약에서 언급된 현물급여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18일 ‘기본소득 토크콘서트’에서 “기본소득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생애주기별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100만원에, 국토보유세로 마련되는 30만원을 더해 국민들에게 연간 1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 측에 따르면 지급 대상자는 2800만 명으로 연간 약 43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시장은 연간 400조원대인 정부 예산을 구조조정해 28조원을 만들고, 주택·아파트·상가 등 모든 토지에 국토보유세를 부과해 15조5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9월 아동·청년·농민·노인 등에게 월 20만~3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의 단계적 도입과 이를 위한 사회복지세(5조~6조원) 신설을 제안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청년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몰아넣는 것은 우리 미래에 대한 약탈”이라며 청년들에게 매달 20만원에서 30만원 수준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2016년 5월 기준 19∼29세 이하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 상태인 청년 146만 명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면 3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지난해 청년 일자리 대책 예산이 2조6000억원이었는데, 효과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간접지원을 털어내고 기본소득을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대선공약 대부분은 기본소득 아닌 사회수당"
기본소득 찬성론자들도 이 같은 기본소득 대선공약이 사회수당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이사는 “기본소득 원리는 '공유 부'의 충족인 반면 사회수당은 필요에 따른 것”이라며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안이 사회수당”이라고 두 개념을 구분했다.
개별 공약과 관련, “박원순 시장은 한국형 기본소득을 제시하면서 조건부 사회수당인 실업급여를 묶어서 기본소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 개념에 혼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의 공약에 대해서는 “아동배당, 청소년배당, 노인배당, 장애인 수당 중에서 조건을 따져서 선별해서 심사해서 주는 급여는 기본소득이 아니"라며 "농어민과 장애인 기본소득은 사실상 사회수당”이라고 했다. 또한 “이 시장 공약에서 가장 전형적인 기본소득은 토지배당이다. 5000만명 국민들에게 다 주는 급여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사회수당 수준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복지, 행정,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사회수당 수준이 전세계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부족한 사회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사회수당인 정책이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민 이사는 “지금 한국은 사회수당이 너무 적으니까 이를 도입할 때 기본소득 형태로 도입할것인지 논쟁이 있다”면서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61만원이 1인가구 빈곤선인데 30만원 정도 주게 된다면 부분 기본소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4차 혁명시대, 일자리 정말 사라질까
로봇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은 고착되는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이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는다.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존 복지국가 모델이 주장하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원장은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세금을 매기고 그 돈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사회적 논의를 지금 시작한다면 10년 쯤 뒤엔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가 총체적으로 줄어들 것이란 예측은 기우라고 반박한다. 이상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대표는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의 대전제에 반대한다”면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복지서비스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복지국가 패러다임은 혁신경제와 사회안전망 확충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할 정부역할을 줄이고 기존 복지체제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게 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자리를 못찾게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과 사회수당을 구분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논의가 허투루될 우려가 있다. 그러면 복지국가로의 이행도 늦어질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