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경쟁차 견제 심해…주력 모델 판매 하락세
“전편 보다 나은 속편 없잖아요?”
올해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에 대한 전망을 묻는 기자 질문에 한 자동차업계 고위관계자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놓은 말이다. 답에 뼈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 유수 자동차 브랜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거친 그다.
악평(惡評) 이유는 간단했다. 자동차 시장 환경은 전년보다 악화됐는데, 한국GM이 내놓을 신차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현대·기아차가 이를 악 물고 반전을 다짐하고 있다. 제임스 김 사장이 연일 “하면 된다”를 외치고 있지만 대내외 환경이 가시밭이다.
올해 부임 2년차를 맞는 제임스 김 사장이 “데뷔 시즌 성적이 대박을 치면 후속작이 부진하다”는 일명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부임 첫해 대박은 CEO의 독(毒)?
한국GM의 지난해 성적은 더할 나위 없었다. 불경기로 소비자 지갑이 닫혔지만 한국GM 신차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GM은 내수시장에서 총 18만275대를 판매하며 2002년 회사 출범 이래 연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한국GM 사령탑에 앉은 제임스 김 사장에 대한 평가도 상한가를 쳤다. 당초 야후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오버추어코리아 등 정보통신(IT) 기업 CEO만 거친 그가, 자동차라는 이종업계에서 활약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물음표가 달렸다. 그러나 제임스 김은 성적으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제임스 김의 부임 첫해 성적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뷔시즌 대활약한 선수들 경기력이 2년차에 급격히 떨어지는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 수렁에 제임스 김이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도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경쟁자 견제 탓이다. 지난해까지 한국GM은 현대·기아차 그늘 아래 놓인 언더독(underdog·이길 확률이 적은 약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중형 세단 강자 쏘나타 판매량을 신형 말리부를 통해 대거 긁어오는데 성공하며, 현대·기아차를 위협할 다크호스로 입지가 변했다.
이에 현대·기아차 내부에서도 한국GM에 대한 견제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7일 한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숙제는 한국GM, 르노삼성 등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아 오는 것”이라며 “제임스 김 사장이 성공한다는 것은 (현대차 등) 경쟁자를 꺾겠다는 것인데 손 놓고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비싼 크루즈, 작은 볼트…효자모델 되기에 모자란 ‘한 끗’
현대차 선전포고 앞에 제임스 김 사장이 내놓을 마땅한 비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현대차는 오는 3월 부분변경(페이스 리프트)을 거친 신형 쏘나타를 국내 시장에 출시한다. 쏘나타가 신차효과에 힘입어 판매량을 늘릴 경우 말리부 판매량 저하가 불가피하다. 말리부는 지난달 3565대 팔리며 전월대비 판매량이 14.2% 줄었다. 쏘나타 출시가 판매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
한국GM은 지난달 내놓은 준준형 세단 올 뉴 크루즈를 올해 핵심 차종으로 꼽고 있지만, 가격경쟁력이 문제다. 올 뉴 크루즈 가격은 1890만~2478만원대로 책정됐다. 경쟁모델인 현대차 아반떼(1410만~2415만원)나 기아차 K3(1395만~2420만원)보다 가격이 500만원 가량 비싸다.
한국GM이 2월 한 달간 '올 뉴 크루즈 에브리데이 이벤트'를 시행하고 계약고객 중 매일 1명을 추첨, 선정된 고객이 이달 내 차량출고를 할 경우 125만원 상당의 맥북(MacBook)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실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절대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할인 카드가 먹혀들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GM 플래그십 모델인 임팔라가 부진한 것도 문제다. 출시 초반 2000대 내외를 오가던 임팔라 월간 판매량은 지난달 387대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말 현대차가 경쟁 모델인 그랜저IG를 출시했고, 한 체급 아래 모델인 르노삼성 SM6가 흥행하며 임팔라 수요를 흡수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GM이 제임스 김 사장에게 약속한 임기는 3년이다. 만약 제임스 김 사장이 올해 실적 반등은커녕, 점유율 하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들 경우 향후 신차 물량 확보 등 본사 차원 지원을 얻기 힘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개소세 인하가 종료된 뒤 자동차 수요가 얼어붙었다. 한국GM이 지난해 이상의 성적을 거두려면 신차가 흥행해야 한다”며 “하지만 (제임스 김 사장이 목표로 내걸었던) 판매량을 맞추기 쉽지 않아졌다. 한국GM 판매라인업 내 소비자가 살 모델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볼트 EV가 내연기관차 중심의 국내 자동차 시장을 얼마나 흔들어줄 수 있을지는 기대가 된다”며 “다만 정부가 전기차 운행 인센티브에 박한 게 문제다. 도심지 버스전용차로 비보호 진입, 전용번호판 사용 등 전기차 수요를 늘려낼 수 있는 비책이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게 전기차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