깂싼 중국산 공세에 ‘트럼프 리스크’ 덮쳐…“국내 시장 보호 조치 필요”

포스코 광양제철소 4열연 공장. /사진=포스코

국내 철강업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신음하고 있다. 간신히 지난해부터 업황이 회복세를 보여왔지만 올초부터 시작된 보호무역 열풍에 회복세가 꺾일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캐나다 국경관리청은 지난달 25일 한국산 산업용 철강구조물에 대해 42.8%의 예비관세를 부과했다. 예비관세는 내년 4월 25일 최종 판정이 나올 때까지 적용된다. 지난해 9월 현지 철강회사 3곳은 한국산 등의 철강제품이 자국에서 팔리는 것보다 낮은 가격에 수입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소했다.

 

캐나다에서 지난해 1∼11월 수입한 한국산 산업용 철강구조물은 7억976만달러 규모로 전년 동기보다 368.2% 증가했다. 최근 들어 수입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점이 캐나다 측의 반덤핑 예비판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멕시코도 지난해 12월 한국산 페로망간에 35.64%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 페로망간은 철과 망간의 합금으로 제강용으로 쓰인다. 2015년 멕시코의 한국산 페로망간 수입액은 490만달러(56억원) 수준이다.

철강 수입 규제는 지난 2015년부터 호주, 미국, 중국, 인도, 태국, 칠레, 베트남,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는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이 관세 부과에 나서면서 철강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관세 폭탄은 값싼 중국산 철강제품으로 인해 붕괴하는 자국 철강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시작됐다. 하지만 관세 폭탄 대상은 더 이상 중국산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중국과 근접한 국가인 한국에 대한 관세 부과도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도 한국산 철강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코트라 도쿄무역관은 일본 내에서 한국산 후판 수입량 증가 현상에 대해 경계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후판은 선박, 교량, 산업기계 등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인 두꺼운 철판이다.

코트라 조사 결과 일본의 한국산 ‘HS코드 720851’ 후판 수입량은 2015년 40만8061톤에서 2016년 41만9643톤으로 2.84% 증가했다. ‘HS코드 720851’은 두께가 10㎜를 초과하는 후판이다. 한국은 해당 제품 수입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 1위 국가다.

일본에서는 한국산 후판 수입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최대 후판 생산 공장이 화재로 가동 중단됐다. 세계 3위, 일본 1위 철강업체인 신일철주금의 오이타공장은 지난달 5일 발생한 화재사고로 8개월간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오이타공장은 월 20만톤의 조선용 후판을 생산하는 곳으로 일본 내 생산 비중이 20% 수준이다. 이 사고로 한국산 후판 수입량이 더 늘어나게 될 경우 규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KOTRA 도쿄 무역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한국산 후판 수입 증가에 따라 일본 업계의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으나 최대 규모 후판 공장 화재로 내수 공급 감소가 예측돼 한국산 수입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입장에서는 HS Code 720851 제품 수출과 관련해 수출 중량은 증가한 반면 금액은 감소했다”며 “일본의 수입단가가 억제돼 온 가운데 수출량은 증가해왔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무역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판단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일 보호무역주의를 외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철강 규제를 점차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미국 내 모든 송유관 건설에 들어가는 철강재를 미국산으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와 함께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키스톤XL 송유관’과 ‘다코타 대형 송유관’ 신설과 관련해서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에 담긴 미국산 철강은 ‘모든 제조 과정이 미국에서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미국산 제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료는 물론 소재, 반제품 모두 미국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시장에 송유관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국이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철강은 374만톤에 달한다. 이 가운데 송유관 수출은 47만톤이며, 매년 10만톤 가량의 송유관을 수출하던 현대제철과 세아제강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송유관 소재를 공급하는 포스코 역시 ‘트럼프 리스크’를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180일 안에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만들 계획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 한 채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섭씨 1500도 뜨거운 쇳물이 나오는 용광로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포스코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경우 철강 수입과 관련해 뚜렷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열린 ‘국회철강포럼’에서 이윤희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는 “한국은 현재 창도 방패도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철강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보호무역주의 타파도 중요하지만 값싼 중국산 철강제품 유입도 해결해야될 과제다. 한국은 최근 5년간 철강재 수출증가와 함께 수입도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현재 3000만톤을 수출하고 있으며 수입도 2000만톤이나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내수대비 수입 비율이 4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총 수입량도 유럽연합(EU), 미국에 이어 3위다. 이 가운데 중국산 수입량이 독보적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중국과 달리 수입 강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세계 1위와 2위 철강 수출국이지만 철강 수입은 10위권 밖에 있다. 반면 한국의 역내 수입의존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 가운데 중국산과 일본산이 무려 95%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대중 수입비중이 64%로 압도적이다.

이윤희 상무는 “한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 수입장벽은 여전히 낮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각종 제도 구축과 유통 및 상관행 등으로 수입재 방어가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철강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수출은 수출대로 막히고, 국내 시장은 외국에 내주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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