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역사에서 비롯된 해묵은 파벌 싸움 지속…임원 자리 둘러싼 이권 다툼에 조직 발전 뒷전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민-중소기업 금융상황 긴급 점검회의'에 참석한 시중은행장들. (왼쪽부터)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 사진=뉴스1

"국내 금융권 안에는 다양한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출신으로 갈라져 있는 임원들 간 갈등이 가장 문제가 크다. 계파 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은행이 다수다. 이를 해결해야 한다. 내부 안정성이 없으면 금융사 임직원 등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금융사 임원은 국내 금융업계가 과거 계파 갈등 등 소위 권력 다툼으로 풍파를 겪었지만 최근에도 이런 갈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합병에서 발생한 계파 갈등, 낙하산 인사 등으로 인한 임원 간 갈등이 해결돼야 은행이 수익을 키울 수 있는 본래의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권의 계파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명맥을 잇고 있다. KB금융은 '권력다툼형' 내부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14년 KB금융은 회장과 행장이 동반 사퇴로 이어진 사상 초유의 KB사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KB사태는 주 전산기 교체로 인해 촉발됐다. 기존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유닉스 시스템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논란이 확대되자 금융당국은 파장을 잠재우기 위해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에 중징계를 내렸다. 결국 두 수장이 KB금융을 떠나고 나서야 사태는 일단락될 수 있었다.

이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은행 내부에서 벌어진 행장과 사외이사들 간 대립이 표면적으로 드러났지만 결국 KB금융 내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사이의 반목이 KB금융 사태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재무관료 출신 회장과 연피아(연구원과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 행장이 대립한 낙하산 사이의 갈등이라는 해석이다. 

이홍 KB국민은행 부행장은 "KB금융이 이런 사태를 겪었지만 2014년 윤종규 회장 선임 후 경영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내부 갈등은 일반 직원에까지 영향을 준다. 내부 정상화는 (금융권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내부 갈등을 해결해야 직원들이 일할 맛이 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KB금융 한 사외이사도 "윤 회장 선임 이후에 개인적으로 국민은행 창구를 방문해 직원에게 '윤 회장 선임 후 분위기가 달라졌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며 "그 직원은 '이제 은행에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했다. 그 전까지 임원 갈등으로 직장을 떠나야 하나는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외이사는 이어 "내부 갈등이 발생하면 가장 밑에 있는 직원들이 먼저 안다"며 "그 직장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내부 갈등이 내부 조직을 와해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KB금융은 올해 조직개편을 조직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 한차례 내분을 겪었던 만큼 새로운 인물로 채우는 대신 핵심 보직 임원을 교차 발령했다. 안정성을 강조한 것이다. 윤종규 지주 회장이 올해도 은행장을 겸임했다. 이에 윤 회장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한 것으로 금융권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과거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계파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우리은행 관계자는 "계파 갈등은 옛날 이야기"라고 강조하지만 은행 내부 관계자들로부터 "아직까지 출신 은행을 두고 임원 사이에 갈등이 있다. 임원들이 상업, 한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아래 직원들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한 이후 한빛은행으로 이어오다 지난 2002년 평화은행을 합병, 현재의 우리은행이 됐다. 지속적인 합병이 이뤄지다 보니 출신 은행에 따라 갈등이 발생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은행 한 임원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 본인만 보면 훌륭하다. 하지만 그 주변에 출신 은행을 따지는 사람들이 은행 내부에서 정치 활동을 한다"며 "이번에도 우리은행에 남은 뿌리 깊은 상업, 한일은행의 파벌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08년 이후 한일 출신 행장이 없었다는 데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은행에서 한일이냐 상업이냐 식의 파벌 싸움은 출신 은행이 다른 임원들이 다 나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무시하기 힘든 이 행장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한 KEB하나은행도 출신 간 갈등 잡음없이 내부 조직을 꾸려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현재까진 잡음 없이 화학적 결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 간 합병을 이룬 지 10년이 지난 은행에서도 계파 간 갈등이 나오는 만큼 내부 갈등이 하나금융에서도 나올 수 있다"며 "갈등 없이 은행을 꾸려가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이슈"라고 전했다.

이홍 부행장은 "금융권 안에는 다양한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다른 은행과 합병하면서 발생하는 해묵은 갈등"이라며 "이런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는 금융권이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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