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20대 차 구매 비율 뒷걸음질…수입차시장에서는 핵심 고객 '기현상'

“자동차도 액세서리다. 예쁘고 멋진 차를 타는 게 20대의 로망 아닌가.” (26세 女·MINI쿠퍼 컨버터블 차주)

“자동차는 언감생심이다. 당장 학자금 대출 갚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30세 男·2년차 직장인 )

수입차를 타는 20대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자는 ‘욜로족(YOLO)’이 확산되면서 카푸어(원금을 갚지 못하고 시달리는 소비자)가 되더라도 수입차를 사겠다는 20대가 많아졌다.

반면 수입차를 제외한 국산차 시장에서 20대는 찬밥신세다. 취업난이 가중돼 직장을 구하지 못한 20대가 늘고 있고, 여기에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야하는 ‘빚쟁이’ 젊은 층이 늘어난 탓이다. 경제력과 가치관에 따라 20대의 자동차 구매 능력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양상이다.

◇ “한 번 뿐인 20대, 기왕 사는 거 수입차죠”

31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16년 연간 수입차 신규등록대수는 22만5279대다. 이는 2015년(24만3900대) 대비 7.6% 감소한 수치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수입 디젤차 판매가 부진했고 BMW 화재사건 등으로 수입차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영향도 컸다.

다만 사회 초년생의 수입차 구매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20대(만 20~29세) 수입차 구매는 2006년 1014대, 2010년 3528대, 2014년 9304대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5년 1만1847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20대 수입차 구매 대수는 1만1337대로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5년 전보다는 2.5배 늘었다.

수입차 시장에서 20대가 핵심고객으로 떠오른 이유를 두고 크게 2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이른 바 ‘금수저’, 즉 부모 경제력을 등에 업은 20대들이 국산차보다는 수입차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견이다. 다만 이 같은 분석은 어디까지나 수입차를 일종의 과시재로만 한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3000만원대 저가 수입차 시장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두되는 게 수입차 가격대가 다각화되면서 20대 욜로족이 수입차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는 주장이다. 욜로족은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영어 문장의 약자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현재를 ‘즐기자’ 혹은 ‘충실하자’는 가치관을 지닌 이들을 말한다.


2년 전 국내 한 중견회사에 입사한 고진아(28·가명)씨는 지난해 푸조 2008 펠린(3090만원) 모델을 60개월 무이자로 구매했다. 고씨는 적금으로 모았던 1500만원으로 선수금 50%를 납입했다. 앞으로 60개월간 매월 약 25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고씨는 “기왕 사는 거 남들과는 다른 차, 개성 있는 차를 타고 싶었다. 그래서 수입차를 구매하게 된 것”이라며 “적금을 쏟아 부어 통장이 텅텅 비었지만 후회는 없다. 결혼이나 카푸어를 걱정했다면 차를 영영 사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를 즐기자는 내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 사상 최악의 취업난…국산차도 타기도 어려워

수입차시장에서는 20대가 핵심 고객으로 부상했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을 놓고 보면 20대 차 구매 비율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3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는 전년보다 81만3000대(3.9%) 늘어난 2180만3351대로 집계됐다.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중 국산차는 약 2016만대(92.5%), 수입차는 164만대(7.5%)다.

이 중 청년층 차량소유 비율은 전체 2.6%(55만7000대)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07년(71만3000대)에 비해 1.7%포인트 낮아졌다. 청년층 자동차 소유비율은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청년 구직난이 벼랑 끝까지 몰린 탓에 20대 차량구매 여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통계청의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8%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여기에 급여가 낮은 비정규직과 취업을 포기한 이른바 '숨은 실업자'를 포함하면 체감 청년 실업률은 최대 30%를 넘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어렵게 취직 문턱을 넘어도 전세대란으로 인해 전세 세입자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결혼을 준비 중인 20대들은 당장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탓에 자동차 구매를 뒤로 미루고 있다.

2년 전 한 언론사에 취직한 이태민(30·가명)씨는 “결혼을 준비 중인데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은행 빚만 수천만 원 졌다. 수입차는커녕 국산차 구매도 언감생심”이라며 “주변에 수입차를 타는 동료들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부모가 집을 사줄 여력이 되는 이들이거나 결혼을 포기한 독신주의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두워진 경제 시계 탓에 자동차 시장에서 20대 비중은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수입차사들이 충성 고객 확보를 위해 20대를 집요하게 공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차량을 구매한다면 차량 가격이나 디자인 외에 유지비용 등을 철저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사는 엔트리 모델을 통해 충성 고객 확보를 노릴 것이다. 소비자들은 젊은 때 산 첫차 브랜드를 계속 구매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당장을 즐기기 위해 수입차를 샀다가 파산하는 카푸어가 양산된다면 자동차업계에 중·장기적인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수입차는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할부 프로그램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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