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출신 간부들 "공정 인사 없으면 일 안 한다" 불만

이광구 제50대 우리은행장 내정자가 25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연임에 성공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풀어야 할 과제 중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과제가 가장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상층부에 있는 일부 간부들이 한일 간 파벌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행장이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은행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 25일 이 행장을 우리은행 단독 행장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했다. 이 행장은 오는 3월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임기는 2년이다.

이 행장은 1957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다. 천안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1979년 상업은행에 입행,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개인고객본부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했다.

이 행장은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을 15년 8개월 만에 민영화하는 데 성공시켰다. 4차례 실패 끝에 얻은 성과다. 이후 이 행장은 우리은행 민영화 1기 행장으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우리은행 다수 관계자도 "이 행장이 연임에 성공해야 우리은행 민영화 완성에 속도가 붙는다"며 "민영화를 추진하던 사람이 해야 우리은행 민영화를 마무리 지을 것이 아니냐"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 가운데 이 행장 연임에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행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상업은행 출신 측과 이에 불만을 갖고 '몇 년째 상업은행만 해먹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한일은행 출신 간 경쟁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은행 조직 상층부는 현재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으로 양분화 돼 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실금융기관으로 분류되며 정부에 의해 강제 합병됐다. 합병된 후 한빛은행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2002년 현재 상호인 우리은행이 됐다.

우리은행장 자리는 상업, 한일은행 출신이 번갈아 가면서 맡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이순우 행장이 상업은행 출신으로 한일 출신이 은행장에 오를 차례였다. 당시 이동건 수석부행장이 유일한 2인자이자 한일은행 출신이었다. 행장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였다. 또는 이순우 행장이 연임할 것이란 소문도 있었다. 이 관례를 깨고 이광구 행장이 갑작스럽게 선임됐다. 양 은행 출신들이 벌이는 싸움이 이광구 행장으로 더 격화됐다는 게 한일은행 출신 관계자 설명이다.

이 때문에 상업·한일 양측은 연임에 성공한 이 행장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지주사 전환 등이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고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으로 사명이 바뀌었지만 간부들 사이에선 여전히 상업과 한일로 나누어져 있다"며 "민선 1기 행장을 뽑을 당시 이동건 그룹장이 떨어지면서 갈등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이 연임으로 나서자 상업 출신 간부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며 "그만큼 이광구 행장 연임을 밀었다. 하지만 이동건 그룹장을 비롯해 한일 출신 간부들은 서로 한일 출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수 한일 출신 후보들이 나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민선 1기 우리은행장 확정 전 후보들 이력을 보면 상업 출신은 이광구 우리은행장 한 명이었다. 이동건 그룹장과 김승규 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김양진 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정화영 우리은행 중국 법인장, 김병효 전 우리 PE 사장, 윤상구 전 우리은행 부행장 모두 한일 출신이다. 상업은행 출신 한 명과 한일은행 출신 다수 간 대결 구도로 흘러왔던 셈이다.

이 관계자는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다"며 "이광구 행장 연임을 성공하기 위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조직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이광구 행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한일 출신들 사이에 '일 안 한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한일 출신을 배제하는 분위기를 바로 잡지 않으면 우리은행 내부에 '줄 세우기', '세력화' 등이 심화할 수 있다. 이광구 행장이 지주사 체제를 만들고 민영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이에 걸맞은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출신으로 생긴 계파를 뛰어넘는 인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임추위 사외이사에 따르면 이들은 이 행장에게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으로 생긴 해묵은 파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공정한 인사 체계를 구축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우리은행 임직원 1만5000명 중 20%가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 전 입사했다. 20%가량이 은행 간부로 일하고 있어 밑에 직원들까지 출신으로 인한 파벌 갈등에 휩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선 1기 행장으로 취임한 이광구 행장이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

이 행장은 이를 인식한 듯 연임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상업·한일은행 출신 임원 수를 굳이 같은 수로 맞추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인사를 하는 게 맞다는 사외이사들의 의견이 있었다"며 "6월 말까지 외부 컨설팅과 내부 논의를 통한 객관적 성과평가 기준과 인사 원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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