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시장도 독과점 형태 띄기 시작…포켓몬 고 열풍도 큰 위협
지난해말 ‘리니지’라는 암초를 만난 국내 게임업계가 올해는 ‘포켓몬스터’라는 더 거대한 암초와 맞딱드리게 됐다.
한국 PC 온라인게임 시장은 이미 몇몇 외산게임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다. 최근에는 모바일게임 시장마저 독과점 형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포켓몬이라는 글로벌 대형 지적재산권(IP)마저 한국 시장을 침투해 오자 국내 업계는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해 모바일시장 최대 이슈는 리니지 IP다. 국내 역할수행게임(RPG)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리니지가 모바일게임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는 각각 모바일게임 리니지 레드나이츠와 리니지2 레볼루션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리니지2 레볼루션은 국내 모바일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기록을 세운다.
리니지2 레볼루션은 출시 후 누적가입자수 500만명, 일일접속자수(DAU) 215만명, 최고동시접속자수(PCCU) 74만명, 오픈 첫날 매출 79억원, 일 최고 매출 116억원을 달성했다. 아울러 매출 1000억원을 단 14일만에 달성했으며, 출시 후 1개월 누적 매출 206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에 필적할만한 성과다. 과거 일부 PC온라인게임이 월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한 적은 있지만, 국내 모바일게임으로는 처음이다.
리니지2 레볼루션의 성공은 다시 말해, 다른 국내 중소형업체들의 매출 부진과 연결된다. 영화계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관람객 1000만명 이상을 모을때, 독립영화들이 관람객 확보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매출 부진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중소형 게임사들은 자금 문제 등을 겪으며 게임의 질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은 보통 황금알은 낳는 거위라고 비유한다. 게임을 한번 흥행시키면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제조업처럼 재료비가 드는 것도 아니기에, 서버 관리비와 인건비가 지출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하다.
대형 게임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보통 50%에 육박한다. 일반 제조업체들은 매출이 게임사에 비해 훨씬 많아도 영업이익만 살펴보면 게임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현재 모바일시장은 넷마블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대박이 난 리니지2 레볼루션을 비롯해 기존 흥행작인 세븐나이츠, 모두의마블 등도 여전히 매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엔씨소프트, 넥슨 등 기존 PC온라인게임에 집중하던 대형업체들마저 모바일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견·중소 모바일업체들의 앞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모바일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가 발표한 ‘2016년 상반기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중 한국에 출시된 게임 6700여종 중 5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게임은 64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의 0.96%에 불과한 수치다. 6700여종 중 매출 상위 100위에 한 번이라도 포함된 게임은 92종으로 전체의 1.37%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업체는 전체 게임사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지난 25일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은 포켓몬고가 출시된 24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게임을 내려받아 설치한 사람은 283만명이고 정식 출시 전 비공식 경로로 내려받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291만명이 앱을 작동해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리니지2 레볼루션의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한 첫날 이용자(103만명)의 세 배에 가까운 수치다. 26일 기준 포켓몬 고는 애플 앱스토어 최고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급 성과를 기록한 리니지2 레볼루션을 제외하면 국내 모든 모바일게임을 뛰어넘는 수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소형 게임사들의 시름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리니지2 레볼루션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포켓몬 고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포켓몬의 경우, 기존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트렌드와는 확연히 다른 게임이다. 증강현실(AR)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산 모바일게임 중 AR 기술을 이용해 성공한 게임은 전무한 상황이다. 넥슨, 넷마블, 엔씨 등 대형 게임사들은 AR 기술을 이용한 게임 개발에 소홀해 왔다. 엠게임 등 일부 중견 게임사들만이 AR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막상 AR 게임이 출시되더라도 포켓몬 고만큼의 파급력은 없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포켓몬 고의 힘은 AR 기술이 아닌 포켓몬 IP가 가진 글로벌 인지도이기 때문이다. 포켓몬 IP와 AR 기술이 적절히 조합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포켓몬 고 인기가 지속될 경우, 국내 게임사들도 본격적으로 AR게임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형 게임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성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막강한 자금력과 인기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대형업체들을 이길 방도는 딱히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중소 업체인 넥스트플로어가 색다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데스니티차일드를 성공시켰던 사례가 있지만,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다.
일각에서는 포켓몬 고의 인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콘텐츠가 없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기가 식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포켓몬 고 개발사 나이언틱도 향후 여러 업데이트를 진행할 것이라 밝혀, 획기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한 인기몰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2 레볼루션에 이어 포켓몬 고의 등장으로, 국내 게임업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게임의 독과점 현상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을 필두로 게임업계가 서서히 고사(枯死)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