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소비심리 지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고용·소득 등 근본적 문제 탓
한국 소비자 심리가 ‘나홀로’ 한겨울을 맞고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은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가 나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좀처럼 내수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소득증가률 둔화, 고용악화 등 실질구매력 감소가 소비심리 악화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된다.
◇ 소비 심리, 금융위기 이후 최악
1월 한국 소비자 심리 지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17년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지난해 12월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석달 연속 내림세다. 더불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5.0) 이후 7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다.
CCSI는 한국은행이 한국 가계 부문에서 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총 6개의 주요 개별지수를 표준화하여 합성한 지수다. 기준선(2003∼2016년 장기평균치)인 100을 넘지 못하면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 심리가 비관적임을 뜻한다.
특히 생활형편 부문에 대한 체감경기 악화가 두드러진다. 6개월 전과 현재를 비교한 현재생활형편 소비자동향지수(CSI)는 87로 지난해 12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6개월 후 전망치인 생활형편전망CSI도 91로 지난해 12월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 현재생활형편CSI는 2012년 12월(85) 이후 가장 낮고 생활형편전망CSI는 2012년 1월(91)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가계 재정 상황이 과거보다 나빠진데다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그만큼 작아진 것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도 나빠졌다. 현재경기판단CSI는 51로 전월보다 4포인트 떨어졌다. 6개월 후 전망을 가리키는 향후경기전망CSI는 67로 2포인트 상승했지만 지난해 8월 85에서 하락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취업기회전망CSI(69) 역시 지난달과 비교해 1포인트 올랐지만 지난해 8월(83)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 금리수준전망CSI(126)는 2포인트 올랐다.
이밖에 가계수입전망CSI는 98로 지난달과 같았고 소비지출전망CSI는104로 1포인트 소폭 올랐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수준전망CSI는 148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7포인트 올랐다. 임금수준전망CSI는 112로 2포인트 소폭 올랐다. 주택가격전망CSI는 작년 12월 97에서 1월 92로 떨어지면서 부동산에 대한 가계 인식이 악화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여전히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최근 AI 등으로 인해 농축산물과 같은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체감 경기가 더 악화된 영향이 있다”며 “이로 인해 경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 글로벌 소비 심리 회복세에 한국만 한겨울…"구조적 문제 커"
소비 심리가 갈수록 악화하는 한국과 달리 주요 주변국은 소비 심리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우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정정책 등 기대감에 소비 심리가 풀리고 있는 모양새다. 미시간대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1월 소비자신뢰지수 예비치가 98.1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98.2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최근 12년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는 미래 소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500여 개 가구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다.
일본 역시 소비자 심리가 나아지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12월 일본 소비자태도지수가 43.1(계절조정치)로 전월보다 2.2포인트 높아졌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는 2013년 10월 45.4를 기록한 이후 3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시장 예상치인 41.3도 1.8포인트 웃돌았다. 이 지수는 6개월 이후 전망에 대한 소비자 살림살이 관련 네 가지 항목을 수치화한 것이다. 응답자 모두가 모든 항목에 대해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답하면 100, 그 반대면 0이다.
주요국과는 달리 한국의 나홀로 소비 심리 둔화는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3일 발표한 ‘2017년 경제전망’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올해 소득여건 개선 미흡, 부채 상환 부담 가중 등으로 증가세가 둔화될 전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1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현재 한국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파트는 민간 소비다. 따라서 소비 심리를 회복 시키는 것이 우리 경제의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 심리지수는 10월과 11월 이른바 최순실 사태와 같은 정치적인 이슈로 크게 떨어진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소비자 심리 지수가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데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고용시장 악화 등 경기적 요인과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부담, 주거비 부담 증가 등이 가계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근본적 원인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올해 소비 위축은 지속할 전망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