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리 역할 맡은 금융위·금감원 수수방관…회계법인에 모든 책임 전가는 '비겁'

 

“정작 매 맞아야 할 자들이 몽둥이 들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사전에 막지 못한 금융당국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차원에서 분식회계 방지책을 마련한다는 언론보도에 대한 한 회계법인 관계자의 푸념이다. 그는 “안진회계법인을 필두로 회계법인의 문제점만을 언론에서 연일 보도한다. 하지만 실상은 회계법인은 ‘갑’인 기업에게 철저한 ‘을’ 신세다. 자본시장을 관리해야 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제 역할을 수행해줘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건설업을 포함한 수주산업에 대한 우려가 연일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는 데도 공기에 따라 매출이 인식되는 ‘진행기준’ 때문이다. 공기는 ‘추정원가율(실제원가투입량/실제원가투입량+추정원가투입량)’로 산정된다. 이 추정원가율을 기업에서 자의적으로 조작해 매출을 늘리는 ‘분식회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대우건설 3분기 단독 재무제표에 대해 지정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이 추정원가율 등을 근거로 ‘의견거절’을 제시하고, 연초 들어 현대건설에 대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감리가 이뤄지면서 ‘수주산업 분식회계’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매출을 임의로 늘려 투자자를 속이는 ‘부도덕한 기업’과 쌍끌이로 회계법인은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개선해야 한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부정한 결탁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가 주된 논거다.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현대건설과 더불어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 측에도 ‘회계감리 관련 일체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도 회계법인에 대한 불신(不信)의 연장선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우려가 단순히 회계법인의 '불성실'에서만 비롯됐을 지 의문이다. 수주산업 회계제도의 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금융위원회(금융위), 금감원은 연일 책임의 장막 뒤로 숨어버린다.

‘관치금융’으로 표상되는 거대한 두 금융기관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시중은행에 대한 감시, 감리는 물론 수주산업의 회계를 감사, 감리할 역할도 부여받았다. 금융위의 자본시장과는 회계제도에 대한 전반적 정책수립을, 금감원의 회계심사국은 ▲회계감사 관련 제도개선 ▲감리 기본정책 수립 및 통할 ▲감사인 품질관리 감리ㆍ상장법인 감사보고서 감리 및 결과조치 업무 등을 수행한다. 두 기관은 분식회계를 적발할 수 있는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수주산업을 비롯한 회계제도 개선논의는 연일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지정감사제, 분식회계에 따른 과태료 조정에 한정된다. 금감원, 금융위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22일 금융위가 발표한 회계제도 개혁안도 회계심사국, 회계조사국에 더해 심사감리조직을 더하는 등 금융당국의 권한강화만 이뤄졌다. 분식회계가 발생하기까지 수수방관한 금융당국의 책임소재는 여전히 물을 수 없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제5조(회계감사기준) 1항에 따르면 ‘감사인은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또한 2항에는 '회계감사기준은 감사인의 독립성 유지와 재무제표 신뢰성 유지에 필요한 사항 등을 금융위원회에 사전승인'을 받도록 규정됐다. 회계제도 개혁 이전부터 분식회계를 사전 막을 수 있는 근거조항을 금융당국은 보유했다. 금융당국은 권한강화라는 '매'를 들것이 아니라 책임을 물을 '종아리'를 걷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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