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 의혹' 문체부 송수근 차관 등 사과문 발표…"사과할 자격 있나" 논란
특검에 참고인으로 소환된 인물이 특검에서 수사 중인 내용에 대해 사과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진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송수근 제1차관 얘기다. 송 차관과 유동훈 제2차관, 실‧국장 등 1급 공무원들이 함께 나와 사과했지만 과연 이들이 사과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23일 오후 2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세종청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반성과 다짐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리에 직접 나선 송수근 차관(장관 직무대행)은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할 문체부가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문화예술인과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과 실망, 좌절을 안겨드려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행태를 미리 철저하게 파악해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지 못하고 신속한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도 못했다”면서 “누구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앞장서야 할 실‧국장부터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돼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막상 사과문을 발표한 이들이 사과의 자격을 갖췄는지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송 차관과 유 차관을 각각 5일과 3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당시는 송 차관이 자리에 임명(12월 30일)된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체부가 사과문에 ‘이런 행태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신속한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식의 언급을 기재한 점도 논란거리다. 차관과 실, 국장 등 고위직들이 아무 것도 몰랐다는 주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실무까지 도맡아 행한 범죄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지시한 사람은 있는데 실행한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송수근 차관은 2014년 10월부터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건전콘텐츠 TF’ 팀장을 맡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총괄 담당했다는 의혹 탓에 그 자신도 특검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유동훈 차관도 블랙리스트 작성이 본격화한 2013~2014년 문체부 대변인과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으로 있었다.
결과적으로 송 차관은 블랙리스트 사태 덕에 유례없는 승진가도를 달리게 됐다. 그는 전임 정관주 전 차관과 조직 수장인 조윤선 전 장관이 모두 특검에 구속되면서 채 한 달이 안 돼 실장에서 장관 직무대행으로 뛰어올랐다.
송 차관과 유 차관 소환 며칠 후 기자의 취재에 응한 한 문화계 인사는 “과장 이하 공무원들은 솔직히 시키면 다 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면서도 “(하지만) 그 윗사람들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날 사과에 나선 이들은 차관과 실‧국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