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은 커녕 게임산업 죽이는 일만"…장·차관 구속사태에 '설상가상'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집행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게임업계의 불만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문성 등이 부족해 주무부처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산업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부처로 이관하거나 독립된 지원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문체부가 게임산업 주무부처를 맡게 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당시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터라 여러 부처들이 게임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브로드밴드망을 활용한 첨단산업이라는 점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게임이 기술력을 필요하고 수출을 많이 한다는 점에서, 문화부는 게임이 문화콘텐츠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들이 주무부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는 문체부를 주무부처로 선정했다. 정통부와 산자부는 기반 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 등의 업무를 같이 담당하게 됐다. 문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체부에 대한 게임업계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내대형 게임업체 관계자는 “진흥은 바라지도 않는다. 규제만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산업을 문체부가 맡아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며 “게임산업은 그동안 자력으로 커온 산업이다. 정부는 오히려 국내 게임산업을 죽이는 일만 해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에 김종덕 전장관과 김종 전차관에 이어 최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최순실 게이트와 얽혀 구속되는 등 문체부 내부 문제도 도마위에 오른 상황이다. 특히 조 전 장관 구속 등으로 문체부 업무가 마비되면서 게임산업 관련 정책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부터 게임법 개정안을 통해, 게임물 등급을 스스로 매길 수 있는 자체등급제를 도입했다. 게임업체들은 오래전부터 게임물 자체등급제 도입을 요구해 왔다. 지금까지 게임을 출시하려면 게임물관리위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했다. 반면 문체부가 지정하는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되면 등급을 알아서 결정하고 사후 통보만 하면 된다. 게임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 시장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일 법 시행 이후에도 관련 개정안 도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 배정 등 게임위와 문체부간의 협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위는 지난 16일 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진 못했다.

업계에서는 최순실 사태의 여파가 미치면서 시행령 하위 지침 준비가 늦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체부는 조윤선 장관을 비롯해 장·차관과 국장급 이상 고위 관리들이 최순실 사태 대응에 매달려 있어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

앞서 문체부는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시달려 왔다. 청소년보호법에 규정된 셧다운제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심야시간(자정~오전 6시) 동안 온라인게임 제공을 금지하는 규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게임산업 규제 정책의 전환 필요성 및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부터 시행한 셧다운제로 게임시장 규모가 1조16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여가부가 셧다운제 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셧다운제 폐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에서는 문체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 왔다. 진흥은 못할 망정 게임산업을 죽이는 규제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다.

지난 10일 열린 한국정책학회 주최 게임포럼에서도 게임업계 전문가들은 문체부를 비롯해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지난 정부 10년은 ‘게임 산업 몰락의 10년’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이같은 게임산업의 정체는 결국 정책 실패에 따른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위정현 교수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게임산업 정책을 “게임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셧다운 제도(2011), 4대중독법 논란(2015), 성인 결제 한도 50만원 등 정부는 규제 중심의 산업 정책으로 일관했다”며 “산업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급기야 중국에 역전됐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차기정부에서는 현 문체부 소관에서 순수 문화·예술 지원 기능과 산업 육성·R&D 지원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연스레 게임 산업의 주무부처는 문체부로부터 ‘산업부’나 ‘신규 ICT부처’로 이관될 것이다. 신규 주무 부처에서 게임 산업 생태계의 복원을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웹보드게임 규제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웹보드게임은 수익모델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분야로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다”며 “국내 규제로 상당수 기업이 매출과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4년 1인 이용자의 월 구매한도(30만원)와 1회 베팅한도(3만원), 하루 손실한도(10만원)를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를 도입했다. 이후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해 3월 '월 구매한도 50만원으로 상향·게임머니 1회당 5만원으로 상향' 등으로 완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제 완화에도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미 웹보드게임의 불법이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법적 수단이 마련돼 있다”며 “업계의 재투자 등이 위축되면서 웹보드 게임 3사 매출이 75% 하락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게임산업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에는 어린애들 놀이로 치부하더니 수출 등으로 산업이 성장하자, 뒤늦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문제는 그 관심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오히려 산업을 퇴보시켰다. 이제라도 업계 자율에 맡겼으면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