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만에 충전요금 44% 인하…민간 사업자 수익성 ‘제로’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급속충전기 이용요금 인하 정책을 강화하면서 급속충전기를 설치한 민간 사업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설치한 급속충전기 이용 요금이 줄면 민간 사업자가 설치한 급속충전기 이용료도 덩달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1월 들어 전기차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급속충전기 이용 요금을 ㎾h당 173.8원으로 44% 인하했다. 지난해 4월 충전 요금을 kWh당 313.1원으로 인하한 이후 9개월 만이다.
이에 ㎾h당 6.3㎞를 달릴 수 있는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소유자가 100㎞당 부담해야 하는 연료비는 2759원으로 기존 4970원보다 2200원 가량 줄었다. ℓ당 평균 13.1㎞를 달리는 휘발유차나 1ℓ로 17.7㎞를 갈 수 있는 경유차 연료비와 비교하면 각각 76%, 62% 저렴하다.
환경부는 또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업무 협약을 맺고 그린카드로 급속충전 요금을 결제할 경우 충전요금을 추가로 50% 할인해준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 정책을 시행한 이후 단 한 번도 목표치를 넘어선 적이 없는 데 대한 강경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보급 목표치 달성에만 급급해 민간 충전시장 위축을 이끌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급속충전기 충전 요금을 낮추면 급속충전기 설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민간 사업자 수익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전기차 급속충전기 750대 중 민간 사업자가 설치한 급속충전기는 259대에 달한다. 특히 민간 사업자는 지난해 말 올해 급속충전기 설치 예정 대수를 1003대로 대폭 늘린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전기차 보급대수를 늘리기에 급급해 전기차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기존 313.1원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이제 와 누가 전기차 충전 사업에 뛰어들겠느냐”고 말했다.
환경부가 급속충전기 이용 요금을 기습 인하한 것을 두고 민간 사업자들을 길들이려는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산업부가 예산 지원을 통해 민간 충전 사업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전기차 보급 주도권을 지고 있는 환경부의 충전기 설치 입김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사 관계자는 “올해부터 전기차를 구매하면 함께 지급하는 홈충전기 보급방식도 바뀐다”며 “지난해에는 자동차 회사가 알아서 했지만, 올해는 환경부가 입찰공고를 내고 보급하게 해 환경부의 권한은 전에 없이 커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