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위축 때문에 물가상승 지속 어려워”
경기가 점점 불황의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최근 발표된 물가지표는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이면 물가도 하락해야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런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경기불황에 불구하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진다. 경기 부양정책을 펴야할지, 긴축을 해야할지 정책 수단 선택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근 국내 경제 동향을 살펴보면 물가지수, 유가, 환율 등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의심케 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경제상황이 정말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라면 장기불황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에 대해 "일부 그런 양상이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로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 저성장 고착화…유가, 환율 모두 불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3%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최근 3개월(10~12월) 1%를 기록하며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장바구니 물가(생활물가지수) 역시 1년 전보다 1.2% 올랐다. 현 물가상승 수준이 아직 정부의 기대인플레이션(2%) 수준에 못 미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물가상승 추세는 눈에 띈다.
국내 소비재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이행 의지에 힘입어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유가는 보통 2주를 간격으로 국내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의 평균가격은 이달초 1500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3월 1399원에서 바닥을 친 이후 줄곧 상승세다.
환율 또한 물가상승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1200원대에 급접한 원달러 환율은 미국이 예정대로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더 상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달러화 강세는 같은 수입품에 대해서도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국내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
물가가 오르고 추가상승 가능성도 존재하는 가운데 국내 경기는 침체의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 역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통상 물가가 경제성장률을 추월하면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 물가상승 지속된다고 보기 어려워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국내 경제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물가가 상승하려면 소비가 받쳐줘야 하는데 소비 핵심 경제주체인 가계가 지갑을 열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물가상승추세가 최소한 1년 이상은 지속돼야 스태그플레이션의 진입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데 내수나 유가 등을 봤을 때 물가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 실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진단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의 물가동향을 살펴야 한다. 물가가 최근 오르고 있다고 해서 지속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유가 역시 과거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오르진 않을 것이다.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판단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정규철 KDI 거시경제부 연구위원은 “일부 품목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물가 수준은 아직 낮다. 환율 역시 작년 초에도 1200원을 넘나 들었다. 지금은 이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이다. 수입가격이 갑자기 오르는 등으로 국내물가가 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 물가는 단기적인 부분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현재 국내 경제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물가상승이 장기간 지속돼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데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으로 그러기에는 내수가 받쳐주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변 실장은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는 더욱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시장이 커진다고 보긴 어렵다. 가계평균소비성향도 2000년대 중반만 해도 78%였지만 현재 70%수준이다. 그만큼 소비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물가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