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칼럼 저서 덕 ‘문화통’ 이미지…막상 장관되자 블랙리스트 외혹 한복판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7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한때 문화전도사를 자처하던 정치인이 있다. 선거를 앞두고 그간의 의정활동 홍보를 위해 출간하는 저서 제목도 ‘문화가 답이다’라고 정했던 인물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오페라 칼럼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자 검열몸통 의혹 한복판에 섰다. 조윤선 장관 얘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입건된 피의자 4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일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석에 앉았다. 조 장관은 이 자리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하면서도 본인은 관여한 바도, 본 적도 없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내놨다.

이날 조 장관은 “취임 직후 지난해 9월 첫째, 둘째 주에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상황 보고를 받았다. 예술인 지원에 대해 배제하라는 강력한 요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조 장관은 밤늦게까지 이어진 청문회서 본인 재임기간에 리스트가 실제 집행된 적은 없다고 강하게 항변했다.

또 이날 조 장관은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과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알고 있느냐는 한 야당의원의 질문에 “(청문회 도중) 소식을 들었다”고 답했다. 이중 정 전 차관은 정무수석실과 문체부에서 조 장관과 함께 근무했다. 즉 부하는 블랙리스트에 관여해 영장청구까지 받았지만 본인은 지금도 모른다는 논리다.

지금은 검열 몸통 의혹에 휩싸였지만 한때 조 장관은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까지 낼 정도로 문화전도사를 자처했던 인물이었다. 19대 총선을 몇 달 앞둔 2011년 12월 시공사에서 출판된 이 책에서 조윤선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문화가 정치이자 외교, 교육‧복지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책의 대부분 내용은 본인의 의정활동 이야기다. 차기 총선에서 내세울 본인 콘셉트를 ‘문화’로 정하고 의도적으로 내세운 제목이다.

이 책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씨와 영화배우 안성기 씨, 만화가 이현세 씨,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등 문화통으로 알려진 각계 인사들이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조 장관은 18대 총선을 몇 달 앞둔 2007년 10월에도 시공사에서 또 다른 책을 출판했다. 제목은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이다. 조 장관이 두 저서를 출간한 시공사도 흥미로운 출판사다. 이 회사의 회장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보도검열을 일삼던 전두환 씨 장남 전재국 씨다.

이 책은 조 장관이 유명 미술잡지인 ‘객석’에 2년간 기고한 칼럼 ‘오페라가 있는 명화’를 모아 낸 저서다. 시공사는 관련 보도자료에서 조 장관을 “법조인이자 금융인으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이색적인 오페라 칼럼니스트”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조 장관은 이 책 출간 당시 한국시티은행 부행장으로 있었다.

지난해 9월 조 장관이 신임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되자 다수 매체들은 이 두 책을 근거로 들며 조 장관이 ‘문화에 정통하다’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컸다. 미술과 오페라에 대한 특정한 관심이 최근의 문화행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당시 한 문화산업 전공 학자는 기자에게 “(최근 문화행정은) 예술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조 장관은) 그런 의미에서 엘리트 예술주의자 아닌가”라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 학자는 조 장관이 여성가족부 장관시절 게임 셧다운제에 찬성한 점을 근거로 들었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제7차 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스1

조 장관에게 ‘문화통’ 이미지를 안겨준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가 출간 이듬해인 2008년 (당시) 문화관광부선정 우수 교양 도서로 선정됐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우수도서는 매년 문학, 교양, 학술 분야를 선정‧구입해 공공도서관과 사회복지 시설 등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현재는 세종도서로 불리고 있다.

한 중견출판사 대표는 기자에게 “문체부 우수도서가 되면 일단 국가서 상당량을 구입하기 때문에 매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출판 불황으로 매출 확보가 쉽지 않은 출판사에 숨통을 트게 하는 기회라는 얘기다. 그런데 조 장관 자신도 야인시절 혜택을 본 이 우수 교양도서가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서 주요 도구로 활용됐다.

지난해 11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받은 2013~2016년 세종도서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도서 나눔 3차 심사에 오른 소설 132편 중 ‘소년이 온다' 등 40편이 탈락했다.

이중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로 올해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펴낸 장편소설이다. 핍진한 내면묘사와 희생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출간 직후부터 평단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5‧18을 다룬 게 검열의 이유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일부 도서에 대해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에 대해 검토하였음”(2014년) “편중된 시각의 작품 등을 조정”(2014년) 이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실제 세월호 관련 도서들도 상당수 탈락했다.

일단 청문회장에 나온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하면서도 본인 취임(2016년 9월) 이후에는 실제 집행은 없었다고 여러 차례 강변했다. 또 “이 리스트가 정말 있었다면 실제로 작동됐는지 한번 점검해보자고 했다”며 “그래서 여러 차례 점검했는데, 그중에 770여 명이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도 말했다. 즉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고 강조한 셈이다. 법정공방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황은 조 장관의 기대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일 이규철 특검보는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의) 주된 혐의는 직권남용”이라며 “관련자에 따라 위증죄 여부가 같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취재진이 “리스트 작성 자체는 직권남용 범죄구성 어렵지 않나. 실제 문화정책 예산서 배제하는 등의 정황도 파악했나”라고 묻자 이 특검보는 “그렇다”고 분명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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